퇴근 후, 빛의 속도로 내가 달려가는 곳은 첫째의 태권도 학원이다. 여러 학원과 가게가 함께 있는 그 상가의 지하에는 초록 간판의 편의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은 첫째의 하원 길 방앗간이기도 하다.
첫째를 픽업한 후 아직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둘째를 데리러 가는 시간은 초조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아이가 좋아하고 나 또한 편의점 구경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매일 편의점을 가 느긋하게 구경하며 군것질 거리를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나와 아이는 약속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에만 편의점 가기.' 목요일로 정한 이유는, 아이가 평일 5일을 모두 버티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나는 평일의 끝인 금요일을 제안한 바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편의점 가는 날.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을 어기는 법은 없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말이 바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엔 수요일에 갔잖아요!"
그때는 틀렸고요, 지금이 맞습니다.
지난주도, 지지난 주도 어쩌다 보니 평일 한 번씩의 로스가 있었다. 지지난 주에는 뜻밖의 미용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첫째의 새벽 난동이 일어나 뜻하지 않게 새벽 운동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주 6일 새벽 기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였는데, 두 번이나 평일 한 번씩을 넘기고 나니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평일 하루는 늦잠을 허용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한 번 그렇게 머릿속의 제안을 하고 나니, 장점이 마구 생각났다. 평일은 힘드니까 하루정돈 늦게 일어나도 되지~ 운동도 매일 하면 안 좋다던데? 그러다가 60일 연속으로 일찍 일어나고 이후 600일은 늦게 일어나면 어떡해? 하지만 나는 문득, 기억해 냈다. 그렇게 예외를 만들었던 많은 습관들의 말로를.
내가 더 이상 그 습관을 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어쩌다 보니 2주나 한 번씩 빠지게 되었네. 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생각을 정리했다.
비워 두는 것과 비워지는 것
현재 나는 주 6일 새벽 4시 30분 기상을 습관화하고 있다. 평일만이 아닌 토요일도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주말이라고 늦게 일어나면 결국 육아 파트너인 남편의 짐을 지우게 되고, 주말엔 특별히 멀리 나가 야외 운동을 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일찍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주 7일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사항(평일에 일찍 일어날 것)과 선택적인 사항(주말 하루는 일찍, 하루는 여유를 둘 것)을 나름의 계산에 의해 정해둔 것이다.
일요일 하루는 늦게 일어날 수 있어. 그 달콤한 보상은, 주 6일 애써서 일찍 일어난 스스로의 등을 밀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곤 했다. 월요일에는 어제 늦잠도 자고 맛있는 걸 먹었으니 힘내서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토요일에는 오늘 하루 신나게 달리면 내일은 좀 더 늘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전력질주하게 만들어 준다. 일주일에 두 번이 아닌, 한 번인 것 또한 특별하다. 쉼을 위한 여정이 짧으면 습관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맥이 풀리는데, 반대로 길면 쉼을 기다리지 않고 여정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몇 번 스스로가 의도치 않은 새벽 기상 실패를 겪었을 때, 나는 '아 앞으로 며칠만 하면 쉴 수 있는데, 너무 일찍 쉬어버렸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음날 새벽 기상에 심기일전하기도 했다. 달려온 길이 짧은 만큼 그만두는 것은 너무 쉽고, 찍어 둔 발자국이 적은 상태에서 비워 두면 비워둔 공간은 그 발자국만큼이나 존재감이 커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의 지난 2주의 공백들은 내가 비워둔 것이 아니고, 비워진 것이다. 그것을 앞으로도 애써 비워둘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예외의 루틴화, 그 달콤한 악마의 유혹
일요일에는 늦잠 자기. 그리고 평일 하루 정도는 늦잠 허용해 주기. 이 두 가지 명제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내가 새벽 기상을 결심했을 때 함께 결정한 규칙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한 번 해 보니까 그렇게 되던데...?' 하는 마음으로 홧김에 규칙화해버린 것이다. 후자의 겨우, 지금껏 예외일 수 있었던 날들이 하나의 루틴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앞으로도 내가 겪을 수많은 예외에 대해서도 자꾸만 부제를 달 수 있는 명분이 되어버릴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했으니, 세 번은 어때? 그냥 평일 두 번 주말 한 번 일찍 일어나'볼'까? 그럼 그 습관은 어느 한 곳에도 잡히지 못하고 요동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예외의 루틴화로 인해 참 많은 습관을 잃었다. '일주일에 세 번, 내가 가능할 때 운동하자' -> 일주일에 두 번 겨우 운동하고 세 번이 오는 일이 없었다. '월 수 금 운동하기, 만약 금요일에 약속이 생기면 목요일에 미리 운동하기' -> 목요일에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금요일에 피할 수 없는 일정이 생겨버리면, 결국 그 주의 주 3회 운동 또한 물거품이 된다.
내가 깨달은 것은, 습관에 예외가 많으면 많을수록 스스로에 대해 관대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틀에 박힌 일상에 더욱 빨리 적응하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상에는 더욱 쉽게 지치고 포기한다. 차라리 강제성을 부여해 약간의 '꾸역꾸역'이라는 느낌으로 해내 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욱더 효과적으로 그 습관을 일상화할 수 있게 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나의 과거 기억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지난주의 충동적이었던 목요일과, 지지난주의 부득이했던 금요일의 기억들을.
어쩔 수 없던 날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내버려 두기
지난주 수요일, 나는 아이와의 약속인 목요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편의점을 들렀다. 집에 먹을만한 간식이 마땅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아이는 기다리던 목요일이 오기도 전에 편의점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다. 아이가 매일 편의점을 가고 싶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오늘은 목요일이 아니어서 안 돼."라고 말하던 내가 생각 나 스스로에게만 관대한 듯한 마음에 속이 쓰렸다.
한 주가 지나, 다시 수요일이 되었고, 불현듯 지난주의 이른 편의점 방문이 생각났다. '나쁘지 않았는데...' 하지만 꾹 참았다. 지난주는 지난 주였으니까. 마침내 목요일이 되었고, 나는 태권도장 문 앞에서 마주한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편의점 가자!"
나조차도 기다렸던 편의점 가는 날. 정말 오랜만에 맥주를 가방 안에 쓸어 담으며 생각했다. 특별한 날이 계속되면 그날들조차 평범해지는 것이라고. 예외였던 날들은 그만의 특별함으로 남겨두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