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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Oct 25. 2021

정신건강의학과의 밝은 미래

 어색한 자리에서 나는 종종 너스레를 떤다. 어색한 상황이 아니라면 오히려 빈말을 덜 하는 것 같다. 어색함이 주는 긴장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기도 하고. 뭐라도 말하는 것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낫겠다 싶기도 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 너무 자주 사용하다 보면 저 사람 왠지 실없는 사람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할 것 같은데, 그래도 평소에 내가 하는 생각이나 말을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하기는 어렵다. 평소에 별생각 없이 듣던 음악도 누군가 갑자기 내 차에 타게 되어 듣게 되면 놀라서 다른 음악으로 바꾸게 된다. 무슨 비밀스러운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닌데 괜히 신경 쓰인다. 나를 들키고 싶지 않다. 밝은 음악이라면 그래도 좀 괜찮은데 어두운 음악이라면 특히 더 신경 쓰이는 것 같다. 동물들이 부상을 당한 경우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숨긴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리에서 자신이 약한 개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생존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그것을 숨기게 된다고 했다.


  병역판정의로 있으니 환자 진료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종종 아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다. 어떤 어려움을 겪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의견을 구한다. 내가 치료자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도움을 주려고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의사인 친구가 비 오는 날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고 했다. 차가 폐차될 만큼 큰 사고였는데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는 큰 사고에 비해 몸이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서 내게 자신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에 맞는지 물었다. 교통사고 난 뒤 요즘에도 사고 관련된 꿈을 꾸고, 좀처럼 운전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보통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병원에서 진료를 보면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병원에서 말해야 하는지, 혹시 공개 범위를 설정한다면 어떤 것을 말하고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진단서를 발급받아 활용할 곳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차 이득을 민감하게 확인하는 편이다. 병무청에서 나의 역할을 병으로 인한 수검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에 맞는 판정을 하는 일과, 의도적 병역 면탈을 걸러내는 일로 구분한다. 물론 중요한 이차적 문제가 걸린 일이라면 사람으로서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둘은 칼로 자른 듯 구분하기 어려워서 더 민감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고통에 집중하고 싶은데, 사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치 내가 속은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허탈해진다. 친구의 연락을 받고도 진단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한편에 이차 이득을 의심하는 시선이 생겨났다. 마음이 좋지 않아서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친구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정신과 의사도 사람인지라 상대가 내게 많은 것을 숨기고 이차 이득을 바란다는 인상이 강해지면 진심으로 치료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친구가 느끼고 있는 사고 이후의 어려움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비를 보다 보니 사고 장면이 자꾸 원치 않게 떠올라서 괴롭다고 했다. 멀리 있는 내게 전화를 이용해서라도 답답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상황에 얼마나 친구가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평소 힘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기가 무엇을 잘했는지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익숙했던 터라 갑자기 닥쳐온 어려움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처음 진단기준을 묻던 때와는 친구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친구는 힘들어서 병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내게 묻는 것보다, 본인이 진단서를 사용할 일이 있어 병원에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안했던 것 같다.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전공이니까, 자신이 진단기준에 맞냐고 의학적 지식을 묻는 것까지는 스스로 허용이 되는데 내게 고통을 털어놓는 것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렇게 마음이 닿지 않는 일도 생기다니. 나도 경계하는 마음만 세우느라 친구의 고통을 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거의 모든 20대 남성이 일정 시기에 병무청에 의무적으로 방문하여 병역판정검사를 받는다. 오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방문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여기서 마주하는 수검자들은 대학병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조금 달랐다. 진료실에 방문하기만 해도 치료의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신과는 여전히 치료 문턱이 높다. 자신에게 정신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고, 알게 되더라도 치료 결심과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사회적 시선, 불이익에 대한 고민, 가족의 반대 등 수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치료를 결심하고 방문하게 된 분들이었지만, 별생각 없이 통지에 따라 병무청에 방문했다가 심리검사 등을 통해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타인을 통해 듣게 된 병무청에서 만난 친구들은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왈칵 눈물을 쏟기도 한다. 갑작스레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건강검진처럼 자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최근 자해가 과거에 비해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한다. SNS에 모두 행복을 늘어놓는데 자신의 어려움은 어디에도 이야기하기 어려워 남몰래 손목을 긋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농담으로 종종 정신건강의학과의 미래는 밝다고 말하는데, 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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