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등만 대면 잠을 잤다. 한번 잠들면 아무리 옆에서 큰일이 벌어져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한 번은 새벽에 옆 동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밤새 소방차가 출동하고 큰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밤에 잠귀가 어두운 우리 가족들은 그다음 날이 되어서 불이 났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잠의 중요성에 대해서야 익히 들어왔지만, 잠을 잘 자는 때에는 얼마나 숙면이 소중한지 잘 알지 못했다. 아무 때나 자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요즘은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수면장애를 평가할 때 잠에 드는 것이 힘든지, 수면이 잘 유지되지 않는지를 평가하곤 하는데 내 경우에는 잠에 드는 것이 어렵다. 괴로워하며 잠에 들게 되면 비교적 수면의 유지는 잘 되는 편이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며 불면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는 것을 어려워하다 보니 혼자 어떻게 일어나야 하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했다고 하면, 혹시 7시에 일어나지 못해 수업에 늦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모닝콜을 6시부터 5분 간격으로 맞췄다. 아무리 모닝콜이 울려도 못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보니 모닝콜 시작 시간이 점점 앞으로 당겼다. 조금이라도 늦게 잠을 자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지금이 2시인데 내가 과연 다섯 시간만 자고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 네 시간을 자고 일어나는 셈인가. 이런 걱정을 하다 보면 더 잠에 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한 시간을 넘겨 3시가 되면 아 이제 세 시간 뒤면 모닝콜이 울릴 텐데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대학교를 다니는 것이 싫었다. 나는 성인이고 혼자서 분리된 거주공간에서 살면서 제 역할을 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집에 있는 것이 꼭 어린애 티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부끄럽게 느껴졌다. 집과 학교가 그리 멀지 않아 통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취를 하고 싶다고 말해도 종종 부모님께 거절당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2년 뒤 공부량이 늘어나는 본과에 진학하고 나서야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집에서 벗어나니 처음엔 한결 편안하게 생각되었다. 내 취향에 맞게 마음대로 요리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육볶음을 자주 만들어먹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제육볶음이었지만 자주 먹다 보니 나중에는 질리게 되었다. 고사리나 도라지 같은 나물 요리가 먹고 싶어 졌는데, 평소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던 반찬이라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혼자 자취를 하면 불면이 시작되었는데, 집을 벗어나고 잠을 못 자는 것을 보면 내가 집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단 생각이 요즘엔 든다. 잠에 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진정하고 안정시키는(self-soothing) 능력이 필요하다는데 혼자인 자취방에서는 그게 어려웠던 것일까. 집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었던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 나도 가정을 꾸려 부인과 아들과 딸 강아지까지 함께 사는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나 내게 집이 소중했구나 하는 생각. 어려서는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꼭 미처 알지 못했다가 제육볶음만 질리도록 먹은 뒤 그리워진 고사리와 도라지의 맛처럼.
집에서 종종 요리를 한다. 여전히 좋아하는 고기 요리도 하고, 그냥 집밥용 요리를 하기도 한다.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따라 하다 보니 집에 오븐과 수비드 머신, 압력솥을 마련하게 되었다. 몇 시간씩 걸리는 거창한 요리를 하기도 한다. 밑반찬도 종종 만드는데 그에 반해 멸치 볶음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정말 조금 걸린다. 10-15분 정도 걸리니 간단한 요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복잡한 다른 요리를 하는 때보다 멸치볶음을 할 때 진짜 요리를 한다는 기분이 든다. 괜히 그 기분이 이상해서, 멸치볶음은 이렇게도 간단한데 왜 이렇게 강렬한 인상이 남을까 생각했다. 이유야 뭐, 수없이 먹었던 집에서의 요리가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괜히 이런 식상한 감상을 말하는 것이 멋쩍은데, 어려서 집에서 먹던 반찬들이 종종 떠오르는 때가 있다.
딸이 잠드는 때에 베개를 삭삭 만진다. 작은 손바닥을 펼치고 손바닥으로 베개의 천의 질감을 느끼려는 듯 베개의 모서리를 문지른다. 이제 돌이니까,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저런 행동을 하다니. 내가 경이로웠던 것은, 나도 아주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습관이기도 했고, 나의 어머니도 같은 습관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그 애착 이불을 아불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나는 녠녠녜라고 불렀는데 과연 승하는 뭐라고 자기의 이불을 지칭할까.
생각해보니 나는 잠이 오지 않던 때에 스키 타는 장면을 떠올렸다. 어려서 아버지랑 스키를 타고 돌아오면, 차에서도 잘 때에도 한동안은 꼭 뱃멀미처럼 몸이 좌우로 흔들거리는 듯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내가 스키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좌우로 흔들거린다고 생각하다 보면 금방 잠들 수 있던 날들이 있었다. 승하가 잠을 좀처럼 자지 않아서 안아서 재워야했을때, 승하를 안고 마치 요람이 흔들거리는 것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스키를 타는 상상을 하며 잠에 빠지는 것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려서 안겨서 흔들거리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