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원 Sep 09. 2021

걸음마를 지켜보는 일

  최근의 정신치료 세션에서 내가 수련받은 의국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처음 정신과에 들어가게 되어 설렜던 마음. 첫 출근을 하던 날 꾼 꿈도 기억하고 있다. 입국식날, 마치 내게 새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교수님들은 마치 새로운 부모처럼, 전공의 선배들은 새로운 형제처럼 생각된다고 했다. 그때 과장님은 내가 조증임이 분명하다고 입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으셨던 것이 기억난다. 


워낙에 학생 시절부터 정신과에 가고 싶어 했던 터라 기대가 컸던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곳에서 보냈던 감사한 순간들이 마음에 남는다. 내가 일 년 차일 때에 치프였던 정형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연락했다. 정형은 꼭 큰 형처럼 무서웠는데 그럼에도 이 집단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정형이 4년의 의국생활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는데 그것이 안타깝기도, 그래서 더 좋기도 했다. 


 두서없이 근황을 묻다가 복무를 마치고 무엇을 할지 정형이 물었다. 집안 사정도 있어서 당분간 봉직의 생활을 하다 개원할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큰 병원에서 펠로우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나의 수련병원이 나중에 내가 개원하게 되는 시기에 병원을 홍보함에 있어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였다. 


 수도권에서 지방의 병원 출신임을 내세우고 개원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사실이다. 내가 환자라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때에 그 사람의 학력을 보고 어디서 치료받을지 선택을 할 텐데. 정형은 좋은 기억은 우리끼리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정형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해주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 했던 시절 동안 잘 챙겨주고 가르쳐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연락했는데 함께한 수련 병원 이름을 희석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아쉽기도 했다.


 대개의 전공의 수련은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 우선 전쟁터에 던져두면 어떻게든 본인의 몫을 하게 되는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근무 시작 전 해야 하는 역할을 숙지하고 근무가 시작되고 나면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 월급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처음 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당혹스럽기도 어렵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입사한 뒤 인턴 1년 동안 한 달마다 과를 옮겼는데, 새로 적응하고 평가받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다양한 과의 다양한 선생님이 모두 다른 역할을 기대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반대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든 잘 평가받아보겠다고 이리저리 신경 쓰느라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인턴 숙소에 돌아와서 동기들과 이런저런 푸념을 하며 전우애를 다졌지만, 그럼에도 고향이 사라진 사람처럼 서럽기도  외롭기도 했다.  


 인턴을 마치로 정신과 의국에 입국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선배들이 나를 반겨준다는 것이 좋았다. 다른 과 동기들은 첫날부터, 아니 오히려 그전부터, 수십 명의 환자 주치의를 맡아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 과는 환자를 주지 않고 약 2개월간 의국 책상에 앉아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위기를 보도록 했다. 씨앗이 자라는데 물과 시간이 필요하듯, 전공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과의 전통 덕분이었다. 


  타과에서 첫날부터 쏟아지는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보통 업무가 절대적으로 많은 탓이기도 하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갈아 넣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과가 모두 일 년 차가 시간을 두고 배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들께서 전공의를 질타하기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뒤에서 많이 지켜봐 주셨는데 그것이 감사했다. 정신과적으로 환자가 나아지기 위해, 혹은 좋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적용하는 원칙을 전공의 수련 환경에 적용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요즘 8개월 된 둘째 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다. 아직 몸을 가누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몸을 움직이고 일어서고 넘어진다. 반복해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혹시나 좌절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데, 꼭 좌절이나 포기가 뭔지 모르는 것처럼 반복해서 애를 쓰고 있다. 보고 있자니 안쓰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옆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아이는 놀랍게도 매일 조금씩 걷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한 사람의 몫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을지.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종종 꺼내보기 위해 기록하기로 했다. 


이전 03화 유튜브 시대의 자아성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