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인의 노래를 좋아한다. 예전에 석형이 김목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는 운전하며 듣기엔 졸리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차에서 조용한 음악을 듣는 편이라 특별히 더 졸리지는 않았다. 김목인의 음악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백반이랑 비슷하다. 어느 때나 고르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심심한 것 같으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음식이 대화를 방해하지도 않는데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차에 시디를 넣어두고는 수년간 반복해서 들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는 좀처럼 시디를 모으지 않았는데, 김목인의 앨범은 시디로 구매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영화나 책을 보게 되는 때에도 요즘에는 이전에 재미있게 즐긴 것을 다시 보는 습관이 생겼다. 새로운 것이 주는 신선함도 좋지만 요즘엔 편안함에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지, 여러 번 반복해도 새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는지가 어느 순간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어려서는 다른 음악을 좋아했다. 화려하거나 특이하거나 눈길을 끄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그래 봐야 친구들은 내가 듣는 음악이 다 비슷하다고 말할 테지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좀 더 뾰족하고 공격적인 성향의 음악들이었다. 요즘에도 때에 종종 다시 들어보곤 하는데 오랜만에 들어서 반갑기는 하지만 어려서처럼 진심으로 다시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당시 좋아하던 가수가 새로 앨범을 내는 일이 있어도 이전처럼 팬이 되는 일은 잘 없다. 그 시절에는 정말 마니아라고 불러도 될 만큼 좋아함을 넘어서는 어떤 끌림이 있던 것 같다. 발달 단계라고 봐야 할지, 꼭 갈증을 해소하듯, 오랫동안 찾고 있던 딱 맞는 퍼즐 조각인 듯 느껴졌다. 꼭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책이기도 만화이기도 영화이기도 했다. 당시 강렬하게 좋아하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다시 좋아해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좀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하는데, 꼭 어려서 쓴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하고 잡아떼고 싶기도 한데, 왠지 내 친구들이 나를 지금 보면 너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구나 하고 말할 것만 같다.
여행지에서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곳을 찾는 것. 보통의 여행지에서 덤터기를 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차피 여행자들은 한번 방문하고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식당마다 특색도 특별히 없는 것 같고, 들뜬 마음에 방문했다가 괜히 속은 것만 같아서 실망하는 경우가 잦았다. 반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곳은 그런 걱정은 들지 않는다. 평범한 메뉴를 선택한대도 오랜 세월을 견디고 남은 것을 마주한 느낌. 꼭 내가 어떤 비밀스러운 장소를 알아낸 것만 같아서 기쁜데, 그것이 그 여행의 특별한 기분과 어우러져 더 소중하게 남는다. 물론 규모가 크지 않고, 아기의자와 같은 편의시설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은 어린 둘째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어 그런 곳을 방문하지 못한 지 조금 되었다.
처음엔 그런 작은 가게를 좋아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비효율적인 것을 찾는 사람이 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 습관이 조금씩 확장되어서 요즘은 작고 오래된 곳을 집 근처에서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카센터라던지 카페, 꽃집 같은 곳. 한두해 찾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취향으로 굳은 것 같다.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나라면 병원도 노포를 찾듯 그런 곳을 일부러 찾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큰 프랜차이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러 식당도 정비소도 병원도 그런 노포를 찾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화려함은 없더라도 자꾸 방문해도 불편하지 않은, 적당한 장소의 적당한 분위기의 노포 같은 의원을 운영하고 싶다. 많은 돈을 갖고 싶다거나, 크고 세련된 것을 찾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인데 괜하 나의 이상한 취향을 고집하다 도태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전공의 시절 휴가기간에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도쿄의 변두리에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처음 혼자 하는 해외여행인데 일어를 할 줄 몰라 긴장을 많이 했던 것이 떠오른다. 7박 8일 정도 되는 여행 일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다녀왔다. 혼자서 밥도 먹고 목욕탕도 다녀오고 운동도 하고 술도 마셨다. 숙소 근처의 한 술집에 거의 매일 방문했는데 나도 주인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떠듬떠듬 의사소통을 하며 술과 피자를 먹었다. 휴가를 다녀온 뒤, 그 경험에 대해 선배인 공형과 이야기했는데 공형이 특이하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가서, 관광지가 아닌 변두리의 지역에서 있다 온 것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A시가 연상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깜짝 놀랐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채로 A시와 비슷한 곳을 찾고 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헤맨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마음속의 장소를 현실에서 찾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