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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l 08. 2023

사적인 사람

  다른 사람에 관심이 많다. 글을 쓰려고 카페에 왔는데도, 옆자리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듣게 된다. 그런 증상을 성인 ADHD의 증상 중 하나로 보기도 하던데, 그런 성향이 내게도 있는 것도 같다. 일요일 점심의 카페에는 한 커플이 있다. 나는 글을 쓰겠다고 앉아있는데 들리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저 커플은 서로 휴대폰도 잘 보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표정은 아닌데 나는 한편으로 그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지하철에서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직장에선 어떤 모습이고 또 가까운 사람에겐 어떤 모습일지.  출퇴근길의 사람들은 다들 졸리거나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지 궁금해진다.


 좋은 이야기만 듣게 되지는 않는다. 어느 식당의 커플의 이야기는 왠지 듣고 싶지 않다. 작은 식당에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자신의 성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기 회사의 제이슨이란 상사가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지. 아마도 고학력에 좋은 직장을 다니는지, 자신의 회사 내 학교 선배는 같은 학교 출신인 자신을 얼마나 특별하게 대해주는지. 어떤  대학 출신 사람들은 대체로 어떻더라, 그래서 직장에선 성공하기 힘들다 와 같은 이야기. 나는 그들과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글을 쓸 때에, 참깨를 압착해 참기름을 짜내듯이, 내게 좋은 부분만, 걸러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좋은 일만 경험하고 좋은 이야기만 적을 수는 없다. 어쩐지 그건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다. 어쩌다 찾아오는 따뜻한 이야기에 감동하고 안도하는 때도 있지만, 힘든 이야기를 견뎌내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게도 이런저런 마음이 든다. 환자의 마음이 치료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반응을 역전이라고 한다. 그것이 때로는 긍정적인 감정일 때도 있고 부정적인 감정일 때도 있는데, 역전이가 느껴지는 경우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한다. 이것은 상대가 내게 전해주는 감정일까. 혹시 이 감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만약 하나의 메시지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개의 경우 환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저들이 사람이 저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마치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아래의 취약한 자기감 때문일까. 내게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소외감은 무엇일까. 그나저나 나는 왜 마음이 이렇게 불편할까, 그건 상대 마음의 어떤 부분과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부딪치기 때문일지.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으러 온 것뿐인데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참 개인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일기를 쓰면서  블로그로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기를 올리는 블로그를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요즘 흔히 말하는 선한 영향력과 같은 단어가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지극히도 사적인 사람이라 공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것일까. 나 자신이 하나의 숫자, 하나의 경향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왠지 기분 나쁘다. 나는 이타적인 마음이 부족한 사람인가. 이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사회학에 대해 통계를 이용하는 양적 연구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읽게 된 책에서는  질적 연구라는 분야가 있다고 한다. 어떤 집단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한 개인이 어떤지 자세히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와 비교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주 4회 이상을 진행하는 정신 분석은 말할 것도 없고, 주 1-2회 진행하는 정신 치료도 일 년 만 진행해도 100시간이 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도 내가 환자에 대해 다 파악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상대의 정말 일부만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타인의 시선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인생의 증인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는 책 중, 나카무라 루미 작가의 아저씨 도감이란 그림책이 있다. 그 작가는 아저씨에 관심이 많은지, 잘난 아저씨, 휴식 중인 아저씨, 지친 아저씨,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 정체불명의 아저씨 등을 분류해서 그렸다. 흔히 길에서 보이는 다양한 유형의 아저씨가 있지만 잘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 보통일 텐데, 작가는 어떻게 많은 아저씨들을 관찰하고 그리고 분류하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그 이유가 책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아저씨 도감에선  관찰하고 그리는 대상에 대한 상당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것이 책을 읽으면서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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