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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l 12. 2023

뒷통수를 긁는 마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편은 아닌데 뒤통수를 긁는 이야기는 반응이 좋다. 이 이야기에 친구든 가족이든 과도하게 가혹한 자기 기준에 시달리는 분이든 다들 웃으며 좋아한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은 돌격대 이야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데, 내게는 뒤통수 긁는 이야기가 그와 비슷하다.


수련 초기에 의국 선배인 효형으로부터 뒤통수 긁는 방법과 요령에 대해 배웠다. 나는 잘 모르는 때에 학문적인 것에 대해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뒤통수 긁는 방법이라니. 선배가 알려준 뒤통수 긁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교수께서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 혹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조금 부족한, 혹은 좀 난처한 표정을 짓고 한 손을 올려 뒤통수를 긁으라는 것이었다. 조금 인상을 찌푸리면 더 효과가 좋다고 했다. 내가 기대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해 화가 나려던 교수님도 뒤통수를 긁는 걸 보고 있자면 에이 참, 하고 화를 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단 너무 자주 사용하면 정말 부족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저 농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진지했다. 과거의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게는 자존심이 중요했기 때문에 처음엔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타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런데 뒤통수를 긁으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선배는 정신과는 학문적인 영역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인성은 열심히 한다고 교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 반쯤 체념하는 마음으로 몇 번 따라 해봤는데 효과가 좋았다. 정말이지 이대로라면 혼나겠구나 생각되는 지점에서 혼나지 않게 되었다.


진료 중에도 난처한 일을 겪게 되는 일이 자주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환자분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했다. 예를 들면 최대 처방 일수가 정해진 약들이 있는데, 환자분께서 약 처방을 더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병원 자주 오시는 것이, 그리고 오래 기다리시는게 힘드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정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 것이 어렵습니다. 의원에 속한 봉직의로서 죄송한 마음입니다'라고. 뒤통수를 긁는 마음으로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 보통은 병원 시스템, 비효율적인 대기 상황 등에 잔뜩 화나신 분들도 뒤통수 긁다 보면 화를 내지 않으신다. 그래서 뒤통수를 종종 긁는다. 실제로 긁진 않더라도 뒤통수를 긁는듯한 마음가짐을 갖는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뒤통수를 긁어서 모두의 화가 누그러질 수 있다면 적당히 긁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왜 그렇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는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부족하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 내게 절박했나 싶기도 하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정신과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이야기했던 정신과 마니아였는데. 이상하게도 인턴 시절엔 외과에 끌리기도 했다. 외과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느낌이 좋았다.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하게 되는 환자가 수술을 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의사들이 바이탈 바이탈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환자분들도 의사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랐는데 그것이 상상 속의 의사의 모습이기도, 드라마 속 자주 등장하는 의사의 모습이기도 해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간혹 상상한다. 그렇게 생명에 가까운 일을 하고 한껏 드높아진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어땠을지. 그래서 진지한 표정으로 '골든 타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은 소중하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드라마에선 성격이 아주 괴팍한 사람이더라도, 그것이 타협하지 않는 깐깐함처럼 그려지던데. 만약 내가 외과를 선택했다면 나도 뒤통수를 긁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정신과는 학생 실습 때도 면담 과정은 지켜볼 수가 없으니까 대체 정신과 의사들은 어떤 사람일까 알지 못했다. 매번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또 게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어 마음대로 상상하기도 했다. 대체 치료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정신과 의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정신과 교수님들은 다 나를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신과에 와서 다행인 것 중 정신과 의사의 마음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것도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하면 어땠을지 상상은 종종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 직업에 만족한다. 괴팍함이든 공격적인 마음이든 내 성격의 단점이 용인되는 분위기라면 나는 내 성격에 대해 별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았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일을 하게 되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덕분에 가족관계나 주변 지인과의 관계가 좀 더 부드러워졌을까. 나는 정신과에 오기 전에도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 탓에 해야만 하는 것들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엔, 그럴 시간에 공부를 좀 더 하면 좋을 텐데 하고 다른 친구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자아 동조적이라고 해야 하나, 과거엔 무용하고 의미 없고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나 하는 게 낫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지금은 내게 직업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 부분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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