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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Nov 18. 2021

도자기 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어린 시절의 사진 하나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담임선생님과 사진을 찍는 순간이었다. 나는 당시에도 지금처럼 볼살이 많은 것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볼살이 적어 보일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고민하다 입을 살짝 벌리고 볼을 빨아들여 살짝 깨물었다. 입 안으로 볼살이 들어오면 밖에서 볼 때 볼살이 적어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는데 얼마나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나왔는지. 오히려 그냥 사진을 찍은 것보다 못한 결과였다. 나는 당시에도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사진은 우스웠고 그래서 지금까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이 되었다. 


 병무청의 복무를 마치고 나서 다시 정신과 의사로서 일 하는 것이 걱정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진료와는 성격이 달랐다. 일을 3년 이상 쉬었다는데서 불안이 몰려왔다. 외래 진료야 수련을 받으면서도 수년간 하던 일이고 내 강점이라고 생각하던 일이니 몸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의 적응기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다독여도 걱정이 쉽게 잦아들지는 않았다. 최근의 불안은 아주 민감하고 어려운 환자를 상상하는 것이 원인이었는데, 모두가 어렵고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그 환자를 어떻게 잘하면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마음 한편이 조여오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 괜한 부담감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정신치료 시간에 그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과도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치료자)은 내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다. 모든 사람이 내게 만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텐데, 내가 노력한다면, 혹시 뭔가를 더 잘한다면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려운 목표를 두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더 노력한다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습관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긴장해있고 자신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도자기 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열심히 도자기를 만든 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도자기는 모조리 깨버린다는 내용이었다. 적당히 기능상에 문제가 없다면 그 도자기를 그냥 사용하거나, 정 문제가 된다면 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도 좋았을 텐데 왜 다 부숴버렸을지. 글을 쓰면서도 비슷한 갈등이 반복된다. 잘 쓴 타인의 글을 볼 때마다 내 글이 못나 보인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그것이 내 개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조금만 쓰고 나면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중단하거나,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족해도 계속 쓰고 피드백을 받고 숙달 과정을 거치다 보면 발전하게 될 텐데 나는 그것이 어려웠다. 시작을 못하니 연습할 기회도 놓치고 자괴감만 크게 들었다. 도자기 장인에 대한 글은 장인정신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한 글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높은 기준이 내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실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들. 좋게 해석하자면 더 긍정적인 결과를 위한 노력이라 바라볼 수도 있어서 스스로 괜찮다고 여겨왔다. 자신을 몰아붙여 살아왔다고 생각해서인지 예상하지 않은 일에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와 타인을 엄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학회에서 다른 치료 사례를 듣다 보면, 치료 목표 중 하나가 가혹한 초자아의 완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그것이 내 성격 탓은 아닐지, 치료자로서 부족한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해서 정신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제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치료 시간에는 이런저런 주제들이 오고 갔는데, 자신에 대해 조금 너그러워지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과제가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해 글을 써보라는 과제. 1번 ㅁㅁㅁ는 어떤 친구, 2번 ㅇㅇㅇ 는 어떤 친구 하며 글을 썼다. 신기했던 것은 잘 친하지 않은 친구에 대해서는 글을 쉽게 쓸 수 있었는데 친한 친구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려웠다. 친한 친구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어려웠다. 티비에 나오는 범죄자를 보는 때에 쉽게 미워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내 앞에 오래 앉아 면담한 경우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그것이 정신과의 딜레마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좋아하거나 미워한다고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워졌다. 


 주호는 요즘 지연행동을 한다. 샤워를 하든, 양치를 하든 본인이 하기 싫은 것을 아빠 엄마가 하자고 할 때 발바닥이 땅바닥에 딱 붙었다고 한다. 못 가요, 딱 붙었어요. 하며 느릿느릿 움직인다. 씻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엔 화가 많이 났는데, 아들이 씻기 싫지만 부모에 협조하려 노력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줄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 요즘은 조금씩 이해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나은 시선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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