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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30. 2023

비혼 농담은 하지 않아야겠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직업적으로 환자분들께 금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많이 권해드리는 편이면서도 스스로 습관적인 음주 문제가 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술 마시는 것을 권장(강요) 했다. 술을 잘 마신다고 하면 좋은 후배가 들어왔다고 반기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하면 꼭 그것을 어떤 결함 혹은 능력 부족처럼 여겼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들은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한 듯 선배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앞에만 가면 맥주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준다며 정수기라는 별명을 가진 선배도 있던 것을 떠올려보면 가학적인 색채도 꽤나 있던 것 같다.


나는 엄청난 술고래는 아니지만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술 마실 때의 적당히 취하는 느낌. 긴장이 풀어지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좋았다. 좋아하기도 하는데,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집단에서 인정받는 방법이라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어울리기 위해서 마시고,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마시고, 우울해서 마시고, 술 자체가 좋아서 마시기도 했다. 습관의 힘이란 무섭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련을 마친 뒤로도 여전해서, 퇴근 이후 한두 캔씩 먹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잠이 안 오면 더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하다 싶으면 덜 마시기도 했으나, 마시지 않는 날에는 술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다. 나중엔 수면을 위해 마시기도 했는데, 어떤 날엔 내가 단순 애호가의 선을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문득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며 건강에 이런저런 이상신호가 생기기도 했다. 술을 조절해야겠다는 마음에 알코올 중독에 대한 몇몇의 책을 읽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은 경각심에, 아 술을 끊어야겠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는 없겠다며 다짐하고 금주를 시도했다. 나는 문제를 인식했을 때 지식화(Intellectualization)를 방어기제로 자주 사용하는 사람 같다. 나의 경우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아 그 기전이나 심리에 대해 파악하고 나면 불안이 감소한다. 아 보통은 이런 문제로 술을 마시는구나, 술을 자신이 처방하는 약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구나. 이제 다 알았으니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머리로만 다짐한 것은 오래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술은 망각과 부정을 돕는 물질이기도 하니 금주 결심은 금세 잊게 되었다. 내 머릿속은 금세 다른 주제를 고민하고, 금주는 그리 길게 유지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술을 조절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은 내게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작년 겨울 정신과 동문회에 가서는 오랜만에 본 형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권형이 술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형은 나보다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던 형이었는데. 이유를 여쭤보니 그동안은 자신이 외로워서 술을 마셨는데 결혼을 하고서는 마음이 안정되어 자연스럽게 술을 끊게 되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본 권형의 표정이 정말이지 편안해 보이기도 했고, 혈색도 체형도 좋아 보여 아 형은 정말 행복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냥 지나갈 법한 일인지로 모르겠는데 권형의 평온한 표정이 왜 그렇게도 마음에 남던지. 자꾸만 생각이 나고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게 되었다. 아내와 친구 등 듣는 사람마다 내가 술을 끊겠다고 다짐한 것이냐고 물었다. 어쩌다  얼떨결에 금주를 결심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지금은 안정인 4인 가족으로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도 외롭지 않은데 왜 술을 마시나.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 유지하고 있다.


결혼하고서는 확실히 마음이 안정적이다. 학창 시절 자취하면서 막연한 불안감에 잠들기 어려워하던 것도 요즘은 정말 어린 시절처럼 잘 잔다. 내가 잠들기 어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혼자 잠들었을 때 혹시 제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은 어린 두 아이들이 정확한 모닝콜처럼 제시간에 일어나고, 또 나를 아주 확실하게 깨워주기 때문에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나는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는지,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불안정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나도 세상 사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되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도 마음 편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은 별로 들지 않는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아이가 나를 달라지게 했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하면서 이런저런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진다. 과거엔 프로필 사진에 누가  아이들 사진을 올려두면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세대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것이 정말 호르몬의 변화인지 환경의 변화인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미혼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만 같은데, 당시와 지금이 선형적으로 연결된다고 하기보다는 마치  다른 단원이  시작된 것 같다. 부끄러워서 혹은 투정하기 위해 비혼 관련 농담을 종종 했으나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여튼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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