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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l 03. 2023

자갈치가 매운 생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서 중학생 시절이었는지, 어쩌다 갖고 싶었던 것이 디자인이 멋진 시디플레이어였다. UFO처럼 생긴 빛나는 은빛 플레이어였는데 당시 내 기준에 보이게 너무도 아름다워 보여서, 꼭 그때는 그걸 가지면 소원이 성취된 듯 기쁠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갖고 있는 cd도 당연히 없었는데도, 꼭 그 시디플레이어가 갖고 싶었다. 부모님을 졸라서 시디플레이어를 구매했다. 사기 전엔 꿈에도 나오고, 마치 갖게 되면 어떤 아름다움을 내가 갖게 된다는 상상까지 들곤 했는데 막상 갖게 되니, 그렇게까지 기쁘진 않아 놀랐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갖기 전엔 마음이 커지지만 갖고 난 뒤엔 그렇지 않은 것인지. 어쩄든 시디플레이어를 구매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까지, 대략 7-8년은 매달 용돈을 받으면 음반을 한 장씩 사러 방문하곤 했다.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을 때는, 내 마음의 변덕에 따라 원하는 음악으로 바꾸는 과정이 귀찮고, 당시 내 주머니 사정에 비하면 음반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한 앨범을 한 달씩 듣게 되었다. 그런 때엔 일련의 과정이 있다. 대체 어떤 곡이 들어있을지, 설레면서 처음 한 바퀴를 돈다. 간혹 마음에 더 드는 곡이 있어도 반복해서 듣지는 않게 된다, 반대로 마음에 덜 드는 곡이 있다 해도, 보통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니까, 스킵 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어느 트랙 다음 어떤 트랙이 나오는지 이미 다 꿰게 되는 것은 기본. 어느 날은 한 가지 악기만 집중해서 들어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피아노 왼손만 따라가보기도 한다. 한 앨범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나중에 내 뇌가 적응을 하나보다. 마치 처음 스웨터를 입으면 까슬하게 느껴지지만 나중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이. 나중엔 좀처럼 집중을 해서 듣고자 해도 음악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때는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음 앨범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렇게 들었던 음악들은 괜히 뭔가 나랑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라도 당시의 음악을 들으면 그 시절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음반을 사서 듣던 시절의 일들은 내게 중요한 일이기도 했는데, 좀처럼 말 꺼내기가 어렵기도 했다. 당시 친구들에게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눈총을 받기도 했다. 왜 다들 mp3을 사용하는데 혼자만 거추장스런 시디플레이어를 쓰냐는 평을 종종 들었다. 유난스럽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뭘 듣고 있는지 보면, 가사 없는 이상한 음악 듣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나 보다. 그래서인가 취미이지만 취미라 말하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좋아해왔다. 몰래 하는 취미, 몰래 먹는 곶감 같은 취미라고 할까. 이제는 나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든, 내가 듣는 음악이 타인의 취향에 맞지 않든 나도 시간이 지나서 크게 개의치 않게 되었다. 다만 어쩌다 시절이 변해 더는 음악을 시디로 듣지는 않고, 나도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를 애용하며, 그 cd들은 본가에서 가져오지도 않으니, 잊어버린 취미가 되었다. 


어려서의 음악 듣던 습관이 문득 떠오른 것은, 아들 주호가 김모긴이 듣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5살 주호에게 김모긴이 뭐냐고 물어보다 김목인을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올해 나온 김목인의 4집이 너무 좋아 올해 4-5개월을 반복해서 들었다. 출퇴근할 때 듣고, 운전할 때 듣고, 점심시간에 듣고, 다림질할 때 듣고, 밥 먹을 때 들었다. 그렇게 매일 듣던 때에는, 정말 완전한 음악이다 하고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마치 화이트 노이즈처럼 좀처럼 집중해서 듣고자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올해의 좋아하는 음반으로 나는 당연히 김목인을 뽑을 텐데, 너무 좋아한 탓에 더는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니, 아마 다시 집중해서 듣기 위해선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앨범 중의 '겨울, 창문'이 좋았다. 혼자 길을 걸으면서도 흥얼거리면서 이 노래 좋지 않냐고 주호한테 물어보곤 했는데 그게 생각났는지. 주호가 정말 그 곡이 좋아서 내게 틀어달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아빠를 기쁘게 할 목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이와 함께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제 50개월이 된 주호는 벌써 많이 자랐다. 몇 달 전인가 주호가 과자 자갈치를 먹고 있었는데 내 생각엔 전혀 맵지 않은 자갈치가 주호 입맛에는 매웠던 모양이다. 주호가 과자가 매워요 하길래, 아 주호는 과자가 맵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대답해 줬는데 주호가 짜증을 냈다. '아니 내 생각에 과자가 매운 게 아니고 그냥 과자가 매운 거라고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와이프와 한참을 서로 보고 웃었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발달하는구나.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는 능력이 아이에게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게 자갈치가 매우니 다른 사람에게도 자갈치가 매운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호에게 집에서 따로 틀린 믿음 과제(false belief task)를 시행했는데 아직 어려운 것을 보면 아마도 후자였을 것 같다. (못난 아빠를 용서하렴 주호야) 주호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묘한 뉘앙스를 스스로 구분하려고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나는 자갈치가 매운 과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아직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이해받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나는 그것이 직업이니까 내게는 그것이 중요하다. 이상하게도 나는 20대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 같다. 주변 대인관계도 괜찮고, 사회적으로도 잘 지내고 있었는데도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외로움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에도 지금에도 가장 좋아하는 웹툰 작가가 네이버의 억수씨였는데, 대학시절 오늘의 낭만부가 업로드되는 날이 화요일이었는지 수요일이었는지 얼마나 설레면서 기다렸는지. 당시엔 기다려서 한편을 보고 나면 한주를 버티는 힘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오랜만에 어쩌다 정주행을 다시 했는데, 왜 내가 당시 그 만화를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남들은 취향 타는 만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김목인이든 억수씨든 내가 조용히 열렬히 좋아하고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뭔가 다른 대부분의 취향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신분석인데, 봉직의로 일하면서는 아무래도 다수가 별로 반기지 않는 것을 나 혼자 열렬히 갈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기는 한데, 이런저런 사유로 때로는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아마추어 무선에 대해 관심이 생겼던 적이 있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쏘고 안테나를 올려 응답을 기대하는 마음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그것이 정서적으로 왠지 좀 쓸쓸한 마음이 연상되었다. 응답받지 못할 수도 있는 전파는 얼마나 많을지. 보이지 않는 전파가 회신 받지 못한 채 퍼져나가는 상상을 한다. 아마추어무선은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가장 낮은 급수인 4급도 8시간의 교육의 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저 마음만으로 상상해 볼 뿐이다. 차마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기는 어려운데 관심은 있어서 만 원짜리 워키토키를 구매해서 주호랑 며칠 가지고 놀았다. 아빠는 연필을 찾으러 간다 오버. 응답하라 아들. 아빠는 차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 오버. 엘리베이터인데 수신이 가능한지 오버. 


두 돌 가까이 된 승하는 말을 잘한다. 아빠곰 뚱뚱해 애기곰 뚱뚱해, 내꺼야 아빠꺼야, 엄마꺼야. 문득 이것도 일종의 전파 신호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승하는 무슨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을지. 의미 없는 전파보다는 가족과 주변의 신호를 잘 수신하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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