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주호가 며칠 전부터 자기랑 잘 지내는 상급반의 언니(아직 누나와 언니의 구분이 어렵다)가 있다고 말해왔다. 유치원 현관 주변에 나와 놀던 여자애가 그 아이였는지. 보통은 신발을 갈아 신고, 아빠 안녕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유치원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그날은 아빠랑 인사도 하지 않고 후다닥 아이들 무리 속으로 뛰어갔다. 그날 내가 괜히 감성적인 기분이었는지. 어디선가 본 장면이 떠올랐다. 다친 새를 치료해 준 뒤 숲으로 돌려보내는 장면. 책이었는지 영화였는지, 더 데리고 있고 싶지만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새의 행복은 아니기에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는 그런 장면. 아쉬워하면 응원하는 그런 마음들이 떠올랐다. 물론 주호는 어리고, 아직은 아빠가 좋을 나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육아의 끝은 독립이라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가, 언젠가 내가 아이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의 독립뿐이 아닌 나 자신의 독립도 걱정이다. 봉직의로 근무한지도 이제 일 년이 되어가는데 개원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직장에서의 처우도, 근무 형태도 만족스럽지만 아무래도 개원을 언제 가는 하지 않을까. 물론 자리를 알아보고 계약하고 준비를 하는 데에도 일 년가량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이곳에서의 환자분들과의 관계가 이제 좀 쌓여간다는 것이다. 과의 특성상 치료자가 변경되는 것은 큰 불편함이기도 하고, 특히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개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아무래도 부원장 시스템상 오래 근무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상상하던 진료는 어떤 것이었을지. 지금의 환경은 정신 치료 혹은 정신분석에 알맞은 세팅이 아니다. 그것을 내가 좋아한다고 추구하게 되면 나를 고용한 병원에 해를 끼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개원을 해야 할듯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원할 마음을 갖고 있고, 개원 해서도 정신 치료를 위한 세팅을 염두에 둘 것이라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내게 그런 결정을 왜 내렸는지 물어보신다. 남들이 다 정신분석 혹은 정신 치료를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혹시 그것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내가 외골수가 아닌지 걱정하시는 것 같다.
주변을 봐도 정신 치료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나 스스로도 걱정이 많다. 내가 혹시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나는 왜 남들과 자꾸 다른 결정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싶다. 아마도 개원을 하면, 정년도 없는 직업이니 오랜 시간 동안 할 계획이라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인내심이 많지도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꾹 참으며 오래 버틸 자신이 없다. 그런 내게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그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마 독립이라는 것은 내 결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태도와도 연관되지 않을까. 내 결정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지.
그래서 내가 개원할 의원의 이름을 여럿 상상해 본다, 내 이름을 써서 이재원 정신건강의학과. 좋지 싶은데 혹시 나중에 병원을 확장해서 다른 원장님과 함께 근무를 한다면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그다음은 백석 정신건강의학과, 시인 백석을 좋아하고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기도 하다. 그리움과 우울 끝에 찾아낸 갈매나무 같은 단단한 마음이 주는 느낌. 학창 시절 자취방 벽 한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붙여놓고 지냈던 터라, 마음이 더 간다만, 이름이 올드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나는 최근 트렌드인 이름들은 또 마음에 잘 차지 않아서 백석 정신건강의학과가 좋다. 또 다른 이름은 충분히 좋은, 혹은 적당히 좋은 정신건강의학과. 충분히 좋다는 Good enough의 번역인데 유년 시절의 소망을 모두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이만하면 충분히 좋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병원에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으니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고, 또 완벽하지 않은 치료자의 모습을 보고 편안함, 혹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병원명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위에서의 반응은 좋지 않다. 장난같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말했을 때 그냥 듣던 아내도, 나중엔 내게 진심이냐고 되묻곤 했다. 모두가 말라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잘 되는 병원에 속해있기 때문에 일은 힘들어도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 찾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개원을 했는데 방문 환자가 적다면 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고민하게 될 것만 같다. 그래서 개원에 대해 자꾸만 미루고 싶고, 결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개원의 고비를 넘어서면 정말 정신적 독립을 달성하게 되는 것일까. 나이가 적지 않고 아이가 둘이나 있지만 그래도 독립은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