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진료 중 마스크를 벗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한참 고민하다 마스크를 벗기로 했다. 가만히 꼼지락대는 내 입술이 신경 쓰인다. 씰룩대는 것이 내 입술인지 개불인지. 사람들이 다 내 입술만 보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수영복을 입고 대로변에 나간 듯했다. 어디선가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볼 때 우리 뇌가 그 사람에 맞는 최상의 하관을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각자의 최상의 상상을 하고 계실 텐데 내가 마스크를 벗는 것은 실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환자분들이 과거 시선 접촉이 안되면 환자분 성향 탓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내가 마스크를 벗어서 불편해서 그러신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적응이 되지 싶다.
그것이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적당히 환상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벗기로 했다. 처음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고 의무화되던 시절 모교의 교수님은, 얼굴과 표정을 통해 오고 갈 감정이 얼마나 많은데, 방역을 위해 인간성의 교류를 포기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마스크를 쓰는데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벗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개원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어떤 장소라던가 이름이 적합한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몇 번 반복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에 대해 어떤 세련된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세권의 복합상가 자리가,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거기는 삼겹살을 먹을 때 가는 곳이지 정신과 진료를 위해 가고 싶지는 않다며 반려당했다. 다락방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이름이 나는 마음의 안식처,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져서 꽤나 마음에 들기도 했는데 누추해 보인다는 이유로 많은 분들에게 거절당했다. 내가 상상했던 어떤 진료의 이미지와 환자분들이 생각하는 어떤 이미지가 다른 것 같다. 하긴 최근에 본 헤어질 결심에서의 정신과도, 그곳의 의사가 처방을 하는 진료실 벽 뒤로 해파리가 떠다니는 큰 디스플레이가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정신과 자문은 없었는지 처방이 다소 엉터리였던 것 같은데.
환상이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사실관계보다도 내적 이미지, 판타지, 꿈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기도 하다. 늘 사실관계를 다루는 일을 하는 어떤 환자분은, 사실은 사실관계보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내적 현실이라는 말에 아주 크게 놀라 하시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초기 시절 트라우마가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환자가 호소하는 트라우마가 사실이 아니고, 환자의 환상인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가설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프로이트는 그것이 실제로 있던 일인지보다 중요한 것이 환자의 내적 현실이 중요하다며 난관을 극복했다.
개원을 준비하는 것은 나의 환상을 현실화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여하튼, 감염이 걱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스크는 벗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