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단골 손님께 와인 첫 잔을 서빙하면서, 이 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맛있어지는 스타일이니 천천히 드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첫 한 모금을 마신 손님은 흥분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떻게 이걸 천천히 마셔요?”
맛있는 것은 몸이 먼저 압니다. 그리고 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을 합니다.
- 감탄사가 나온다.
- 계속해서 끊임없이 먹고 싶어진다.
- 자꾸 먹고 싶어서 손이 간다.
- 잔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 자꾸만 냄새를 맡게 된다.
- 병 안에 술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짜증이 난다.
- 여러 명이 나눠 마시는 경우, 마지막 남은 술을 똑같이 나눠서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간혹 싸우기도 한다.)
- 마지막 잔이 남았을 때 너무나 아까워서 마실 수가 없다.
- 돈을 많이 벌어서 매일 사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네. 이것이 바로 맛있는 와인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정말 맛있는 와인을 먹게 되면, 팔과 등에 진짜로 소름이 돋습니다. 제 취향의 와인이라면, 향만 맡아도 소름이 돋기도 해요(저에게 너무 변태같다고 놀리던 손님이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간혹, 가게에서 업무적으로 와인 테이스팅을 하다보면, 너무 심하게 맛있어서 짜증이 날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전 업무적 테이스팅 때에는 시간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와인 한병을 일부러 2 시간동안 나눠서 마시는데, 너무 맛있는 녀석을 만나게 되면 자꾸 마시고 싶어져서 2시간을 기다리기가 힘들어 지거든요. 그럴 땐 아예 와인을 안 쳐다보고 가게청소라던가 재고정리를 하면서 일부러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참고 마셔버릴 것이 뻔하니까요. 와인을 먹어봤는데 맛있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면, 그건 맛있는게 아닙니다. 맛있는 건 먹는 순간 기분이 확 좋아집니다. 와인 잔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그 기분이란!
즉각적으로 맛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더라도, 마시다 보면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병에 와인이 반 이하로 남았을 때 ‘아 이런, 반 밖에 안 남았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맛있는 와인입니다. 반대로 ‘아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 저거 언제 다 먹지’라는 생각이 들면 맛없는 와인입니다. 제가 한 잔 먹고 나서 이게 맛있는지 아닌지 헛갈릴 때 확인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와인을 맛보고 난 뒤에 뭔가 느낌이 왔다면, ‘맛있다’ 혹은 ‘맛없다’라는 표현을 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와인 잘 모르니까 조용히 있어야지.”
이런 생각 하지 마시구요. 미각은 너무나 주관적인 영역이라서, 개개인의 편차가 매우 큽니다. 10명이 모여서 같은 와인을 마셔도, 10명의 감상이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와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쓰레기같은 와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취향만큼이나 세상에는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만약 사람마다의 취향이 모두 동일 했다면, 세상의 와인은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지지 못했을 거에요. 그러니 느낌이 온다면 당당히 외치세요.
“우와! 이거 진짜 내입에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