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는 희생은 착취와 도둑질이다'
한 선생님의 메신저 상태 메세지가 머릿 속을 멤돈다.
보건실은 단순히 아픈 학생을 눕혀 놓고 쉬게 하는 곳이 아니다. 보건실은 학생의 증상을 사정하고, 응급 상황에 대처하며, 필요시 가정요양이나 병원진료로 연계하는 학교 안의 '의료공간이자 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일부 보호자들은 이 공간을 아이를 맡겨두는 돌봄 센터처럼 여긴다.
"지금 못 가요. 2-3시간 보건실에서 쉬라고 하세요."
"꾀병입니다. 심리적 원인이에요. 좀 쉬다가 공부하라고 하세요."
"집에 돌볼사람 없어요. 보건실 침대에 눕혀 주세요."
이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보건교사의 전문성이 무시당하는 것 같다. 보건교사는 학생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는 전문가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들은 보건교사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거나 묻지도 않고 무작정 아이를 돌보라고 지시한다. 그 순간, 보건실은 '아이 맡기는 곳'이 되고 나는 '잠시 돌봐주는 사람'이 된다. 보건교사라는 전문성은 투명인간처럼 사라진다.
저학년 땡땡이는 유난히 장이 약하다. 오늘은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 배가 너무 아파요"하며 보건실에 왔다. 열이 있고 안색은 창백했으며,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두어 번 보건실에 왔던 학생이다. 그때도 나는 보호자에게 병원진료를 권했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꾀병이라며 두어 시간 보건실에 눕혀 놓으라고 했었다. 그날 땡땡이는 끙끙 앓다가 보건실에서 토하고서야 집에 갔다. 토물이 범벅이 된 침구는 세탁소에 맡겨졌고 냄새는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 기억이 스쳤다. 나는 얼른 비닐봉지를 땡땡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토할 것 같으면 비닐봉지 안에 토해요."
땡땡이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선생님, 저 오늘 아침에 집에서부터 아팠어요. 그런데 엄마가 꾀병 부리지 말고 학교 가래요. 아프면 보건실에서 쉬래요."
나는 땡땡이를 세심하게 살폈고 병원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담임에게 보호자 연락을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과 똑같은 말이 돌아왔다.
결국 땡땡이는 2시간을 침대에 누웠고, 나는 내내 아이의 상태를 주시하며 다른 업무를 병행했다. 혹여나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더 씁쓸했던건 2시간 동안의 돌봄에도 나는 보호자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도 고맙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보호자가 생업에 바쁘리라 나는 예상한다. 어쩌면 전화할 시간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기에 나는 속상했다.
그리고 다시 그 문장이 떠올랐다.
"대가 없는 희생은 착취와 도둑질이다"
저학년 땡땡이에게 보건실은 피신처다. 수업시간에도 공부하기 싫으면 갖은 핑계를 대고 보건실을 들락날락 거린다. 그런데 요새 방과 후를 시작한 후로 주산이나 한자가 있는 날이면 오후 3시쯤 보건실을 온다.
어느 날 오후 3시, 땡땡이가 보건실 문을 열고 들왔다.
"어디 아파요?"
"피곤해서요."
"그럼 집에서 좀 쉬지 그러니?"
"아빠한테 피곤하다고 했더니 보건실에서 4시까지 쉬라고 했어요."
보건실은 아프지 않은 학생이 피곤하다고 누워있는 공간이 아니다. 나는 보호자가 말한 한 시간 동안 땡땡이를 관찰해야 한다. 혹시나 쉬고 있던 학생이 내가 잠시 다른일에 집중하는 사이 보건실에서 사라진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아이가 피곤해도 주어진 상황이나 여건들로 인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보호자의 안타까움을을 나는 잘 안다.어쩌면 아이가 피곤해도 돌보지도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까지 일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적 있다.
나는 보호자가 말하지 않았어도 학생에게 "20분정도 좀 쉬고 가는 것은 어떨까?"라고 권했을 것이다. 보호자에 전화하여 허락도 받았을 것이다.
당연한 듯 아이를 돌봐주라는 보호자의 태도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방과 후에 보건실에서 학생이 피곤하다고 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요하는 일이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땡땡이만이 아니다. 비슷한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보건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해주는 보호자도 많다. 그래서 감사하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랑만으로 책임을 짊어질 수는 없다.
보건교사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살피고 적절히 조치하는 전문인력이다. 보건실은 무한정 아이를 맡겨두는 공간도, 보호자의 책임을 짊어지는 공간도 아니다.
보건교사가 병원진료나 가정요양을 권할 때, 보호자는 보건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을 학교가 아닌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긴급 상황에 대비해 가정으로 돌봄 인력을 파견하는 지원체계가 마련된다면, 보호자는 아이에게 돌봄이 필요할 때 보건실에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아픈 아이가 학교 보건실에서 보호자만 기다리며 끙끙 앓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아이는 돌봄이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받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시스템이 마련될 때, 보건교사의 전문성도 지켜지고, 아픈 아이의 회복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보건교사는 앞으로도 '대가 없는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받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