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짐볼로 키워줘서 감사하다

당연한 것에 감사함을 잊지 말자

by 민들레

계란을 짐볼로 키우는 아이의 등장

저학년 땡땡이는 보건실을 수시로 들락날락 거린다.

"눈이 아파요.", " 부딪쳤어요.", "넘어졌어요.", "상처가 났어요.", "삐끗했어요.", "모기 물렸어요.","배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힘이 없어요."

항상 온갖 증상을 호소하지만 대부분 별일 아니다. 나는 속으로 '계란을 짐볼로 키우는 아이'라 부른다.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표현하는 습관 때문이다.


눈을 못 뜨겠어요

그날 퇴근 시간 즈음, 땡땡이가 한쪽 눈을 가린 채 보건실에 왔다.

"눈을 못 뜨겠어요. 만들기에 눈을 찔렀어요. 미술부....."

말이 두서가 없었다.


방과 후 강사에게 전화해서 확인한 결과 방과 후에 왔을 때부터 눈이 따끔거렸다고 했다.

나는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 오전에 수업시간에 만들기 하고 가방에 넣다가 모서리에 눈을 찔림.

-그때부터 따끔했음.

- 방과 후시간 부터 증상이 심해져 눈을 뜰 수 없음.

만들기의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아야 했다. 따라온 친구에게 방과 후 교실에서 가방을 가져오게 했다.


땡땡이를 세면대로 데려가서 세안을 시키고 물었다.

"땡땡아, 눈 떠봐. 이제 떠질 거야. 짠~"

하지만 땡땡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땡땡이 눈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담임교사와의 대화

담임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담임교사가 말했다.

"저희는 만들기 한 적은 없어요. 수업시간에 눈이 따끔거린다고 해서 제가 보건실에 가라고 했었는데요. 보건실에 갔다 왔는지 눈 잘 뜨고, 잘 놀다가 하교했는데요. 이상하네요."

담임에게 말했다.

"선생님, 보호자에게 현 상황을 알려주세요."

힘없는 목소리로 담임교사가 말했다.

"네."

나는 땡땡이에게 다시 온갖 괜찮아 마법을 걸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땡땡이는 눈에 더 힘을 주었다.


담임교사가 보건실에 왔다.

"땡땡아, 우리 만들기 한 적 없잖아? 네가 눈이 따끔하다고 해서 선생님이 보건실 갔다 오라고 했잖아? 보건실 갔다 와서 눈 잘 뜨고 잘 지냈잖아?"

땡땡이가 말했다.

"저 그때 보건실 안 갔어요. 괜찮아서 조금 밖에서 놀다 가 다시 교실로 갔어요. 지금 눈 아프고, 따끔거리고 뭐가 찔리는 것 같아요. 눈을 못 뜨겠어요."

담임교사는 당황스러워했다.


보호자 연락과 상황 마무리

그 사이 방과 후에 가방을 가지러 간 학생이 도착했다. 가방에서 꺼낸 만들기의 정체는 두꺼운 종이였다. 보호자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담임교사는 자기 교실로 되돌아갔다. 보호자가 도착하기 직전, 땡땡이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속으로만 '요 녀석 오늘도 계란을 짐볼로 키웠구먼.'하고 웃었다.


보호자가 도착하자 땡땡이는 보건실 커튼 뒤로 숨어버렸다. 보호자가 아이를 심하게 혼내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아이가 보호자와 멀찍이 떨어져 보건실을 나가는 모습에 '혹시 보호자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어 복도로 따라 나가 땡땡이를 불러 세웠다.

"땡땡아, 보호자 맞지?"

땡땡이가 "네"라고 대답했다. 그 광경을 보호자가 지켜봤다.


퇴근 후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남편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말했다.

"학교에서 연락해서 왔으니까 보호자가 맞지. 걱정하지 마소."


다음날 보호자의 전화

다음날 일찍 보건실 전화벨이 울렸다. 땡땡이 보호자였다.

"선생님, 어제 운전 중에 아이가 눈을 못 뜬다고 해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보호자님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땡땡이 보호자는 계속 말했다.

"집에 와서 세수하고 난 후 눈도 잘 뜨고 잘 놀았습니다. 아무래도 선크림이 눈에 들어가서 그랬었나 봅니다." 나는 "다행입니다. 저도 선크림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 어제 세안을 시켰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땡땡이 보호자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땡땡이에게 왜 저를 피했냐고 물어보니 병원에 가기 싫어서라고 하더라고요. "

"아! 네. 제가 어제 땡땡이에게 보호자냐고 물어봐서 많이 당황스러웠나 봅니다. 저는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저도 다시 생각해 보니 보호자님께서 좀 당황스러웠겠더라고요.."

서너 마디 더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성찰

땡땡이 보호자와의 긴 전화. 그 속엔 '아이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없었다. 오직 당황스러웠다는 감정만 있었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나의 노고는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온몸에 픽하고 힘이 빠졌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처치하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참 당연한 것들이 많다. 살아 숨 쉬는 것도 당연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당연하다. 열심히 일했으니 급식을 먹는 것도 당연하다. 당연해서 그런 걸까? 어느 순간 나도 자꾸 감사함을 잊어버린다.


살아 있다는 것,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맛있는 급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두 손과 두 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당연하다 여기지만 모두 모두 감사한 것들이다.


계란을 짐볼로 키우는 아이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보호자가 전화를 걸어와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결국 그 모든 순간이 나를 감사로 이끌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등학교에 119가 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