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도 잘 몰라. 어떤 때는 스승이었다가 어떤 때는 아니었다가 그래. 선생님이 그 답을 찾으면 알려줄게.
- 네. 담임 선생님이 스승의 날 편지를 스승에게 쓰라고 해서 선생님께 썼어요. 쓰면서 선생님한테 써도 되는지 궁금했었어요.
그때가 교사 5년 차였다.
교감선생님께서 메신저로 '2024년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실태조사' 참여 링크를 보냈다. 링크를 클릭하니 설문 앞에 뭐라 뭐라 적어져 있었다. 바빠서 안내는 읽지 않고 바로 설문에 참여했다. 핸드폰 번호로 자기 인증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인증을 하고 첫 번째 문항에 들어갔다. 현재의 직위를 고르라는 문항이 있었다. 보건교사는 없어서 기타를 눌렀는데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문구가 떴다. 설문참여 맨 앞 페이지로 다시 돌아갔다. 뭐라 뭐라 적어져 있는 부분을 자세히 읽었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형사 법무정책연구원은 2024년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응답한 내용을 기반으로 기초자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사는 초등학교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정책에 대한인식과 함께 초등학교에 소속된 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행하는 교육활동침해로 인한 피해를 파악하고 있다고안내되어 있었다. 안내문의 맨 끝에는 조사대상은 전국의 국공립초등학교 교사 중 학급을 담당하여 학생들의 교과와 생활지도를 하는 담임교사, 특수교사, 교과전담교사, 학교관리자인 교장 및 교감, 기간제교사, 6개월 이상 근무자였다. 당구장 표시로 보건교사, 상담교사, 사서교사, 영양교사는 조사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정책에 대한 인식과 교육활동 침해로 인한 피해를 파악하는데 초등교원인 비교과교사는 제외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보건실에서 하고 있는 학생처치나 건강상담, 건강교육, 생활지도는 초등에서는 교육활동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학교폭력 전담기구에 가서 전담기구 선생님들과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학교 복지 위원회에서 학생이나 보호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때도, 위기관리 위원회에서도 나는 언제나 내가 하는 활동들을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여겨왔다.
동료교사동아리단톡에 이런 설문에 비교과라고 제외시키니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고 어떻게 사냐고 말하는 분도 계셨다. 비교과 교사가 수업을 안 한다는 생각에 뺀 것 같다는 선생님도 계셨고쓸데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딥페이크 교육주간 운영 자료집계나 빼먹지 말라고 하신 분도 계셨다. 그들의 말이 다 맞긴 하다. 내가 속상하다고 한들 누가 신경쓰겠는가? 대통령도, 영부인도, 유명 정치인도, 연예인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아닌데 말이다.
그 설문을 기획한 이에게 질문하고 싶다. '초등에서 비교과 교사는 스승인가?'
나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단순히 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교육부는 이번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도 작년 교원 수당인상 때처럼 초등에서 비교과교사만 제외시켰다. 내가꼬일 대로 꼬여 사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2년째 보건교사 수당 삼만 원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교육환경은 강산보다 더 자주 변한다. 어쩌면 교육환경이 수십 번은 변했을 텐데 아직도 나의 수당은 변함없이 삼만 원이다. 이는 비교과 교사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학교에서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사고해야 한다. 그 사실을 잘 아는데 난 여전히 단순하게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은 교내 공개수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수업에 관심이 많아 공개수업을 참관했다. 연구부장이 참관하는 모든 교원에게 참관록과 공개수업 안을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웃으면서 나도 주라고 하던가 했을 텐데 그때는 신규교사였기에 아무 말 못 했다. 연구부장은 공개수업에 참관한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하였고 교생실습도 했다. 임용고시에서 교육학 시험도 봤다. 연구부장 눈에는 내가 교사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근무하는 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되었을 때다. 보건교사라는 이유로 연구학교에 참여의사를 묻지 않았고자연스럽게 제외시켰다. 신규교사 시절에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 우연히 담임교사가 아니니 연구학교 자료개발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자료개발팀에 들어가 학생들이 사용할 자료를 개발했다. 개발팀 교사들이 다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를 교외에서 하는 날 교감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행사에 오지 말고 보건실을 지키는 게 좋겠어요."라고. 순간 당황스러워 "네"라고 답했다. 연구학교에서 관련자료를 개발하고 학생들은 내가 개발한 워크북을 사용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보건선생님은 다른 보건 선생님들과 달라.'였다. 초등교육 전공 교사가 내가 했던 일을 했다면 그런 말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 관리자는 지구별 체육대회가 있었던 날도 보건교사라고 학교에 있으라고 했다. 출장이나 조퇴 등 복무를 사용할 때도 보건교사라고 선생님이 학교를 비면 우리 아이들은 누가 치료하냐며 웃으면서 갖은 눈치를 주었다. 학교폭력 가산점을 줄 때도 처음부터 나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판이 짜여있는데 들어왔다며 눈치를 주었다. 모 선생님이 내가 학교폭력 가산점을 신청하니 대신 양보했다며 그 선생님께 고맙다고 말하라고 했다. 내가 왜 그 선생님께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가?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활동하고 상담교사가 없을 때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을 상담했다. 늦은 시간 생활부장과 성 사안이라고 하여 학부모 상담도 했다. 필요할 때는 교사고 불 필요할 때는 교사가 아닌 나다.
보건, 영양, 상담, 사서를 언제부턴가 비교과라 부른다. 전공과목이 있는데도 붙여지는 비교과교사라는 말은 한자로 아닐 비가 붙어서인지 '교사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비교과 교사라 부르면 전공을 완전히 무시 당하는 느낌이다. 이는 순전히 나의 열등감일까? 교사면 교사지 왜 교과교사와 비교과 교사로 갈라 치기 하는 걸까? 왜 이분법으로 분류하는 걸까? 특히 차별을 할때 늘상 비교과 교사라는 말이 교육현장에서 사용된다.
비교과 교사라는 단어는 누가 만든 걸까? 나도 그 사람이 하는 일 앞에 아닐 비라는 한자를 전부 붙여버리고 싶다. 비인간, 비연구자, 비교육자,비양심 이라고. 그냥보건, 영양, 상담교사라고 부르면 되는데 그것이 뭐가 길다고, 뭐가 발음하기 어렵다고 비교과라는 말로 퉁치는지 모르겠다. 비교과 교사들이 하는 일이 서로 다른데 비교과 교사로 하나로 퉁치니 완전히 보건교사라는 고유성이 퇴색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
친한 후배가 어디 가서 직업을 물으면 주부라고 말한다고 했다. 부득이 직업을 밝혀야 하는 경우에는 공무원이라고 답한단다. 후배는 어디 가서 보건교사라고 했을 때 상대의 부정적 시선이 싫다고 했다. 자신이 왜 병원에서 나와 교사지만 교사가 아닌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보건실에서 하는 전공과 상관없는 일들을 할 때마다 직업적 회의가 든다.
보건교사 커뮤니티에 가면 보건교사라는 정체성이 흔들린다며 그만두고 싶다는 젊은 선생님의 고민을 종종 보게 된다. 젊었을 때 그만두라는 선배들의 댓글이 보인다. 나는 그 어떤 댓글도 달지 못했다. 수당 삼만원이어도 학생들이 좋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남들이 비교과 교사라 무시해도, 함부로 대해도, 전공과 상관없는 공기청정기나 학교소독, 먹는 물 관리등의 일을 해도 보건교사란 직업은 의미있는 직업임은 분명하다.
다만, 보건교사가 되고 싶어 간호학과에 간다는 고등학생을 만나면 간호학과에 가지 말라고 한다. 교직을 원한다면 사범대나 교대에 가라고 한다. 학교 내에서 비교과 교사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들이 겪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설문은 초등교육 전공자나 특수교육 전공자에게 꼭 필요한 설문이다. 이 설문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들이 이런 설문으로 교권을 보호받는 걸 나는 그 누구보다 원한다. 그런데 초등에는 비교과 교원으로 분류되는 이들도 있다.이들의 교권도 보호되어야 한다. 초등에서 교육활동 보호와 관련하여 비교과 교사의 교권은 고려대상, 아니 연구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열등감이 가득한 나는 서글프다.
나는 어떤 경우에는 교사이고 어떤 경우에는 교사가 아닌 채로 학교에서 존재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교사로 사용되다가 버려지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누군가의 필요가 아닌 학생들의 필요로 교사로 존재하고 싶다. 교사로 존재하고 싶은 이와 아닐 비를 붙이는 이들. 나는 교사인가? 나는 스승인가?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다. 타인이 날 어떻게 말하든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내공이 부족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