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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어떻게 살아야 해요? 에 대한 니체의 답

적어도 이러진 말자

by 김태준


반실재론. 탈진실. 구성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허무주의.


이런 세상에서 개똥 같은 유튜브에게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 ” 물을 것인가.(좋은 유튜브도 간혹 있어요)


조회수만을 추구하는 비양심적 기업의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편향이 주는 안도감에 자위하며 “그래도 나만은 주체적이야 암.”이라고 우쭐댈 것인가.


혹자는 묻는다. 당신 참 어그레시브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너라고 별 거 있어?


음. 적어도 나는 옳은 삶에 대한 부정적 정의는 할 수 있어요. (부정적 정의 : 적어도 ~는 아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이렇게는 안 살았다고 대답해야 인간이지 않을까요.


니체가 말하는 말세인(=종말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인의 정의(이하 발췌 by perplexity)


니체의 말세인(末世人, der letzte Mensch) 정의

말세인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의 타락이 극에 달해 오직 소시민적 안락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최후의 인간상을 의미한다. 말세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작은 쾌락과 안락,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에 집착하며, 위험이나 모험, 도전은 피한다.

• 야망, 패기, 책임 의식 없이 주어진 삶에 안주하고, 변화나 자기 극복의 의지가 없다.

• 삶의 의미나 목적을 묻지 않고, 세상이 정해준 가치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 힘의 증대, 저항 극복, 자기 초월 같은 생명력 넘치는 삶이 아니라, 자극에 민감하고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에 머문다.


니체는 이런 말세인을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벼룩 같은 인간”, “생명력이 쇠퇴한 자”로 비판하며, 이와 반대되는 존재로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며 자기 힘을 시험하고 극복하는 초인을 제시한다.



칸트는 계몽하라고 했고

프롬은 자유라 했고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라 했고.


적어도 위의 개념이

회의주의와 대응하는 개념은 아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그런 삶이 가치 있는 건 아니다.


플라톤은 묻는다. 대화편 마지막에.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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