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태어난 세대들. 감히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람들. 야근과 회식, 주말 워크샵을 강조하는 사람들. 그들은 제국이다. 성공한 인생 속에 깊게 자리 잡은 그들의 가치관은 지금 암흑의 안개가 되어 회사를 둘러싸고 있다. 지난 16년간 회사를 다니며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조직은 민주 사회가 아니다. 최고 경영자를 직원의 투표로 뽑지 않는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들은 곰에게 잡아 먹히고 댐에 막히며 대부분은 죽어 나간다. 하늘 위로 거대하게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도 결국은 중력에 의해 수면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추락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육아휴직 제도 속에서 제국은 그 낡은 조직문화로 봉인에 성공했다. 지난 9년동안 육아휴직자는 남녀를 통틀어 단 1명이었다. 제국이 만든 암흑의 조직문화는 조직원들에게 눈치 밥 한상을 배불리 먹였다. 그럼에도 자녀를 가진 직원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소위 말하는 엄마의 희생과 조부모 찬스, 어린이집 종일반, 초등학교 방과 후 과정, 학원 뺑뺑이 등의 차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제국에 비해 난 초라한 저항군이다. 수면으로 낙하하는 커다란 파도 속에서 조금이라도 튀어 오르고자 했던 물보라 알갱이다. 제국과 싸우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낮은 고과와 연봉 동결 그리고 승진 누락 혹은 이기주의자의 낙인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느 날 늦은 오후 감히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람들 중 한 명 앞에 우두커니 섰다.
‘지난 9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개월로 따져 하필이면 108개월입니다. 제가 이곳에 오고 나서 많은 개선을 했고 조직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시지 않습니까? 흩뿌려진 모래 알갱이 같았던 업무들을 하나하나 모아 체계화했고 과거 사고가 뻥뻥 터지던 그 순간들은 지금 조용히 잘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낮에는 회사에 전념하고 밤에는 육아를 하며 피곤에 몸부림 쳤던 저를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러면서도 저에게 좀 쉬어라, 육아휴직을 써라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그저 지금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기 만을 바라지 않았습니까? 회사도 지키고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도 아무일 없이 지키 자니 돌아버리겠습니다. 법에 보장된 저의 권리를 쓰겠다는 것이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육아휴직을 쓰러 떠나겠습니다. 당신들을 생각해 3달이나 일찍 말합니다. 비록 수천만원에 달하는 저의 연봉도 포기하고 고과도 포기하고 승진의 불확실성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것들을 내어주고 저는 제도가 부여하는 시간을 사겠습니다. 그 시간으로 억만금을 주어도 다시 살수 없는 소중한 가족과의 경험들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사실 당신들은 제 인생에 그렇게 많은 관심은 없지 않습니까?’라고 내 자신에게 말한 뒤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육아휴직 6개월만 써도 될까요?”
“6개월 너무 긴대. 퇴사도 생각하고 있나?”
“아니요 꼭 돌아오겠습니다.”
“보고는 해볼께.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케이스가 없어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폐 속 깊이 들어갔다 나오는 한숨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나의 저항은 쉽게 승인되었다. 사내 남성 육아휴직 1호였고 9년내 두번째 육아 휴직자였다. 회사는 한동안 술렁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제국의 일원으로부터 우리회사도 이제 좋은 회사 아니냐 하는 자화자찬이 들렸다. 제국에게 감사드린다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신입 계약직을 뽑아 나의 업무를 대체했다. 인턴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가는 동안 몇몇 동료들은 휴가를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육아휴직 중간중간 전화는 받아야 했다. 그렇게 난 새로운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 다른 팀 직원에게서 잘 쉬고 오시라는 축하 메세지도 받았다.
17조 5900억, 2024년 대한민국 저 출생 관련 예산
0.81명, 2022년 대한민국 합계 출생률
24.1%, 2021년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
112만 5천원, 나의 육아휴직 급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