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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Dec 07. 2023

제 3화 육아와 살림을 하며
아내를 이해하다.

 

  오후 6시 30분 ‘띠띠띠 띠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면 두 아들들이 달려와 안기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말하곤 했다. 항상 난 집에 오면 아내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언제나 그랬 듯 아내는 짤막하게 ‘왔어, 애들 좀 봐줘’ 하고 말하고는 식탁에 웅크리고 앉아 눈으로는 스마트폰을 보며 밥그릇에 코를 박은 채 혼자 먼저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으면 멍한 얼굴로 ‘나 10분만 쉴게’ 하고 안방으로 사라졌다. 마치 교대자가 오면 퇴근하는 편의점 파트타이머 같았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이상하게 집은 고요했다. 그러다 잘 시간이 되면 잠시 뒤적뒤적 할 일을 하더니 다시금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사라져 다음날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내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꿈꾸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퇴근 후 반갑게 인사하고 그간 낮에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이나 소소한 일상을 서로 쏟아내며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며 행복해하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원했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재우고 기분 좋게 같이 육퇴 기념 맥주 한잔을 하는 일상을 원했었다. 그런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드물었다. 아내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둘째가 태어난 뒤로는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묵언 수행자 같았다. 대신 짜증이 날 때는 그 표현이 짙고 고성이 나왔다. 그건 애들이나 나한테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그때 마다 아내를 환기시키고 제지했지만 오히려 역효과 일 때가 많았다.   


   따스한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내가 야속했다. 언제 한 번은 날을 잡아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나에게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 대화도 너무 없고?”

“내가?”

“내가 퇴근하면 유투브 보면서 밥만 먹고 사라지잖아.”

“피곤해서 그래. 다음에는 신경 좀 쓸께”

 

  하지만 아내의 약속은 3일을 채 가지 않았다. 퇴근하면 기계적으로 교대했고 밥 그릇에 코를 박을 것 처럼 웅크린 채 유투브를 보며 밥을 먹었으며 그리곤 홀연히 안방으로 사라졌다. 아내의 무표정은 그녀가 최근에 행복감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까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귀여운 두 아이와 남들 보다 조금은 나은 경제상황 그리고 가정적인 남편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아내의 그런 모습을 날마다 본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답답했다. 난 행복한데 왜 넌 아니냐고….


  서로의 역할이 바뀐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며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고 아내는 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 오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아내의 직업 특성 상 귀가가 늦어 잠에 들기 직전까지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한다는 것이다. 육아와 살림은 그동안 해오던 것이 있어서 익숙했지만 이것들을 매일 하는 일상은 익숙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퇴근 후 3~4시간 정도 그리고 주말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주말도 없었다. 휴직을 하면 오로지 집안 일만 하기 때문에 쉽고 여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예민한 첫째와 장난기 많은 Terrible Two인 둘째를 동시에 매일 돌본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근, 아침에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가 아침에 우유를 먹겠다고 해서 주고 잠시 뒤돌아 간단한 설거지를 했다. 둘째는 반은 먹고 반은 바닥에 쏟아버린 후 손으로 휘저으며 퍼뜨렸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말리기는 커녕 그 시절을 추억하는 듯 동참하는 형제애를 발휘했다. 우유 비린내가 진동하게 된 주방 바닥은 하필이면 오래된 강마루라 금새 불어 터져 버렸다. 주방 바닥을 재빨리 닦아내고 우유로 범벅이 된 아이들을 다시 씻기니 등원 시간이 바짝 다가왔다. 유치원 등원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들을 재촉했다. 첫째는 갑자기 ‘꽥꽥’ 소리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잘 끼워지지 않는 웃옷의 단추가 원인이었다. 내가 끼워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뭐가 꼬인 건지 한사코 거부하며 끝내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어디선가 똥 냄새가 났다. 둘째가 기저귀에 대변을 그득하게 쌌다. 기저귀를 신속하게 갈고자 했지만 눈 만난 강아지 마냥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사자후가 목구멍 끄트머리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다시 꿀꺽 삼키며 좋은 말로 달랬다. 그래도 말을 듣지는 않았다. 째깍째깍, 초침 넘어가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져 결국 힘으로 해결하고 말았다. 둘째도 고성의 울음을 내질렀다. 둘째가 우니 첫째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울었다. 결국 난 전쟁터 속 대포의 포성처럼 사자후를 발사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시정지 된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등원 전쟁을 끝마치니 진이 빠졌다. 매일 내가 출근 전 자주 들었던 아내의 고성이 생각 났다. 지금은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 


  저녁이라고 별일이 없는 건 아니다. 둘째가 먼저 하원하고 몇시간 후 첫째가 하원을 한다. ‘왕자의 난’ 서막이 서서히 올라갔다. 둘째는 작은 스토커가 되어 형을 집요하게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받아주다가 결국 힘에 부쳐 괴성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고 내 고막이 심하게 진동했다. 이 소리에 아침 저녁으로 반복 노출이 되면 분노의 에너지가 단전 깊은 곳에서 끓기 시작한다. 손오공이 아니기에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나. 아이 둘을 진정시켜야 하는 나, 도망치고 싶은 나를 분리시킬 수는 없었다. 아직 저녁 식사도 안하고 목욕도 안 시켰는데 서막에서부터 진이 빠졌다. 하루 종일 잽을 얻어 맞으니 제발 훅이라도 하나 들어와 KO가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강히 거부하는 산만이 둘을 데리고 겨우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나면 아내가 퇴근했다. 다소 상기된 모습의 아내가 화장기가 가시지 않은 채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런 아내와 어색한 포옹을 하고 뒤돌아 선 나는 좀비가 되었다.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눕고 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밥도 먹지 못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흘끗 쳐다 보는 것 같았다. 육아휴직을 하면 마치 육아 킹이 될 것 처럼 장담하더니 꼴이 좋구나 하는 조소가 느껴져 두 뺨이 달아올랐다. 아내는 그 작은 시선 만으로도 나를 KO 시킨 채 아이들을 데리고 구원의 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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