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Dec 22. 2023

제4화 가족을 기다리다 만난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아이들을 등원 시키고 집으로 돌아올 때 놀라웠던 점은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을 하기 전 회사를 다녔을 때에는 회사 건물 속에만 있어서 그런지 동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줄은 정말 몰랐다.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 젊은 여성, 할머니, 할아버지,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걸어 다녔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평범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 건 뜻하지 않았던 그것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휴직을 하고 제일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관계의 단절이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항상 주변에 말을 건넬 동료들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과 언제든지 커피 한잔을 하며 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육아를 하는 지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쌓인 설거지와 빨래 더미들 그리고 방구석 먼지들과 고요한 적막 뿐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가고 나면 난 철저히 고립되었다. 아이들이 하원을 하더라도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고 아내는 항상 퇴근이 늦었다. 아이들을 등원 시키고 하하 호호 웃으며 팔짱을 끼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엄마들이 너무 나도 부러웠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 육아 얘기나 세상 돌아가는 담소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 남자인 내가 낀다는 것은 와이프의 눈에도 그들의 눈에도 썩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겪다 보니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외롭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에 대한 허기가 뱃속을 가득 채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할머니의 가벼운 인사 마저도 묵직하게 반가웠다. 장을 보고 집에 혼자 들어갈 때면 발걸음이 한없이 무뎌 졌다. 집에 들어가면 더 혼자가 될 것만 같았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 일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면 납덩이 같은 적막한 집안의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부산을 떨었지만 그 적막감의 압력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적막감 뒤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초조했다. 자꾸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유투브를 보고 책을 보는 등 내 정신을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정신이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감정들이 매일 반복되니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러한 감정들이 몰려오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복직을 해서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근원 적인 의문이 들었다. 난 왜 이런 감정들을 지금 느끼는가? 나와 같이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감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공허함도 손을 흔들며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뻥 뚫려버린 것 같았다. 그 안은 텅 빈 상자처럼 가벼웠고 쉽게 짓이겨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세계가 따로 있고 나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이  서로 어긋나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외계인이 되어 지금 이 동네를 방문한 것 마냥 제3의 관찰자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도 겉으로만 건성건성 놀았고 아내와의 대화도 겉돌기만 했다. 마치 종이인형이 되어 버린 것처럼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죄책감이 들었다. ‘이러려고 큰맘 먹고 휴직을 한 것이 아닌데’ 라는 후회감이 들었고 놀아주는 시늉만 하는 나쁜 아빠가 된 것 같아 아이들을 볼때마다 미안해졌다. 육아 천재가 되겠다며 호기롭게 아내에게 큰소리 쳤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맞이한 지 4주가 되어서야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시간과 아이들의 반짝이는 두 눈을 바라보며 더 이상 이 소용돌이에 있으면 안되겠다 하는 작은 의지가 조금씩 샘솟기 시작했다. 두가지에 대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먼저 무슨 방법을 쓰든지 다시 현실로 빠르게 돌아와 일상에 집중을 하는 것과 그리고 이 감정들의 근원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 말이다.

이전 03화 제 3화 육아와 살림을 하며 아내를 이해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