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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an 11. 2024

제 6화 마음의 감기를 다루는 방법(2)

 우울증 치료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두가지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 받아 증상을 다스리는 것이 약물 치료라면 심리상담센터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심리치료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중 심리치료를 먼저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타인이 봤을 때 덜 충격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센터를 다니면 그냥 마음이 힘든 것 같아 보이고 정신과를 가면 정말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감기와 비교한다면 약물치료는 대증치료와 같은 것이다. 콧물이 나면 항히스타민을 써서 콧물을 멈추게 하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마음이 우울하면 항우울제를, 마음이 불안하면 항불안제를 복용하게 된다. 그러면 증상이 가라앉고 우리는 그동안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우리의 면역력이 감기 바이러스를 물리치기를 기다리 듯 우울증도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심리치료는 내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자면 근원치료다. 마치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하게 하는 것 같이 면역력이 떨어진 원인을 찾고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시켜 다음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과를 처음 가기 위해 여러 심리적 장벽을 넘어선 것처럼 심리상담센터를 처음 가는 것도 그리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내가 심리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아 내심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마치 밑바닥으로 떨어진 물체가 조금이나마 그 반작용으로 인해 공중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것 처럼 난 지금 더 파고 들어갈 곳 없는 인생의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상담 센터를 스스로 가게 하는 반작용의 용기를 가져다 주었다. 역시 첫 문턱을 넘는 것만 어려웠지 그 이후 부터는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총 3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센터를 방문 했었고 이번이 3번째 마음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이었다.


 내가 겪은 심리 상담가는 마치 초보 여행자와 여행길을 동행하는 경험 많은 여행 전문가였다. 그는 내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과거의 기억으로 떠나는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며 어디로 향할 지 같이 고민해주었다. 전문가라고 모든 길을 아는 것은 아니었으며 심지어 우리는 길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검사도구 그리고 수많은 경험은 우리가 다시 제대로 된 여행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마음의 여행을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용기를 끊임없이 북돋아 주며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함께 나아갔다.


 상담을 통해 난 과거 어린시절 지긋지긋하게 부부 싸움을 하는 부모를 걱정하는 애어른으로 자라왔고 그들(특히 본인의 인생에 불만이 많으신 어머니)의 기대를 대신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높은 성적을 받기위해 매진했고 대학 졸업 즉시 취직을 하고 16년동안 쉼없이 좋은 직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매진하며 살아왔다. 과연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린시절 행동양식의 연장선상에서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누군가의 모범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결과 육아휴직 동안의 단절과 고립은 내 마음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제거했고 그로 인해 마주하게 된 공허의 거울은 나의 내면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비추어 보여주었다.


 상담 선생님은 말끝마다 버릇처럼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내 말투를 지적했다.

“행복해야 해요.”

“누구를 위해서요?”

“화목해야 해요.”  

“누구를 위해서요?”

“성공해야 해요.”

“누구를 위해서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끊임없는 허기와 목마름에 고통 받는 탄탈로스처럼 타인의 끊임없고 높은 기대에 부흥하며 살아왔고 그것들로 인해 나의 삶은 늘 무거웠고 부담스러웠다. 나는 시지프스가 처럼 거대한 타인의 바위를 힘겹게 밀어 올리다 결국 깔려버렸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새롭고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 전에도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관념의 우물 속 이해였을 뿐이다.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만족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의 기대도 충족시키지 않고 있다. 공허와 불안으로 뭉쳐진 타인의 바위는 그냥 그대로 굴러가게 두었다. 인생의 여정을 걷는 내 자신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그대로 느끼고 있다. 내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히 여기고 있음은 곧 스스로가 초라해져 버림받을 까 하는 불안에서 온다는 것을 자각하고 더 이상 그것들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보다는 해낸 것들에 집중하고 여백이 많은 하루 일과를 보냈다 할지라도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여 주고 있다.

“괜찮아. 잘했어. 이것 만으로도 충분해.”


 지금은 삶이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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