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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an 17. 2024

제 7화 아들이 된 아빠

영화 '약속'을 보고

 마음이 우울한 날이 계속되어 펑펑 울고 싶었다. 평소에도 정말 잘 울지 않는 나였기에 눈물의 촉매제가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울고 싶을 때 보는 현재 상영 영화’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다. ‘약속’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예전 박신양과 전도연 주연의 영화가 다시 개봉한 줄 알았다. 그런 신파 영화 정도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였다. 시놉시스를 보니 그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였다. 아마도 제목을 지을 때 나 같은 80년대 생은 염두 하지 않았나 보다. 영화 내용은 엄마를 잃은 9살 어린이 시우와 엄마의 죽음을 숨기지 않고 아들을따뜻하게 위로하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은 홀로 감내하는 시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이 영화 정도면 충분히 울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는 오후 7시부터 8시 반까지 상영이었다. 한창 육아를 할 시간이라 아내의 양해를 구하고 영화관으로 떠났다.


 영화는 신도림역 근처 롯데시네마에서 봤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 낯설지 않았지만, 육아에 치이다 정말 오랜만의 영화관이라 마음이 설렜다. 눈물을 펑펑 흘리기 위해 왔건만 어울리지 않게 2인분의 팝콘 그리고 나쵸와 콜라를 듬뿍 샀다. 상영관에 들어가니 나 혼자 뿐이었다. 곧 사람들이 들어오겠지 하고 매점에서 사온 팝콘과 나쵸를 저녁삼아 허겁지겁 먹었다. 막 콜라를 마시려 하던 찰나에 영화관 직원이 들어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랬다.

 “아이구 사람이 있었네.”

그럼 영화관인대 관객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영화가 시작하기전 광고가 한참 지나가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오직 나 혼자임을 직감했다. 통신사 VIP 혜택으로 공짜로 영화를 보는 것도 모자라 상영관을 전세 낸 것 같은 횡재를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넓고 어두운 공간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다른 좌석 어디에서 도끼 살인마가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고 살짝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 서서히 스크린속으로 빠져들어 영화의 배경인 제주도 속으로 들어갔다.


  자기 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시우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 뱉었다. 그런 시우를 시우 아버지는 따뜻하게 감싸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매일 동시를 쓸 것을 시우에게 제안했다. 주인공 시우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쓴 동시를 들을 때는 어느 구절에서는 울었고 어느 구절에서는 웃었다. 아이가 쓴 동시를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며 시우 부자는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피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고 되새겼다. 그리고 차근차근 그들 나름의 사랑으로 이를 조각해냈다. 이 과정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우 아버지도 한 남자이자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 밀려드는 커다란 슬픔을 아들 몰래 감내하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조류를 타고 파도가 수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다에서 그리고 함박눈이 하염없이 쌓인 제주도의 드넓은 들판에서 그리고 또 다른 제주도의 대 자연속에서 홀로 걷고 촬영하며 거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마주하고 있었다.  


엄마가 죽고 1년 뒤 아빠와의 약속대로 엄마를 만나는 시우의 담담한 모습과 오열하는 시우 아버지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 또한 목놓아 크게 울었다. 그렇게 크게 울었던 것은 실로 몇 년 만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다면 꺼억꺽 소리를 내고 어깨를 들썩는 나를 스스럼 없이 안아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때 영화관에 나 혼자 있을 수 있던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알아차리기 전에 입을 틀어막고 울다 숨이 막혔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웬만한 슬픈 영화는 담담히 보던 내가 억지가 아닌 진심으로 울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난 아버지와의 그 어떤 추억도 잘 생각 나지 않는다. 나에게 아버지란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존재였고 가족의 화목을 아무 생각없이 망가뜨리는 영화 속 빌런 같았다. 매일 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자는 아이들을 당연히 깨우시던 그런 아버지였다. 착실하게 돈은 벌었지만 어머니 몰래 친척들에게 빌려줘 늦은 밤 부부싸움으로 어린 아들의 잠을 깨우던 그런 아버지였다. 때로는 차마 말 하기 부끄러운 사건 사고로 어린 나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던 그런 아버지였다. 학창 시절 내내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아버지도 날 찾은 적이 없었다. 항상 그런 아버지를 피하곤 했다. 아버지가 퇴근하면 슬그머니 내방으로 들어갔고 그러다 늦은 밤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할 때면 조용히 방문에 귀를 대고 쿵쾅쿵쾅하는 심장소리와 함께 무슨 일인지 내막을 들었다. 때로는 안도하고 때로는 실망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도 아버지와는 반항할 거리조차 없는 그런 관계였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 했을까? 그리고 나에게 관심과 애정은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초반에는 주인공 시우에게 나의 7살된 아들을, 시우 아버지에게는 동시대 아버지인 나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보면 볼수록 내 아들의 모습과 부성애도 하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는 초라하고 상처입은 내 어린 시절 작은 아이의 모습만이 스크린에 남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가 그리웠다.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닌 따뜻하고 부드럽게 아들을 감싸는 시우 아빠와 같은 그런 나의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난 영화 속 시우가 되었다. 그동안 마음 속 깊이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영화관 스피커의 울림을 통해 처음으로 들었다. 잔잔한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따스하게 맴돌았다. 아버지에게 안기고 싶었다. 시우처럼 그 품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영화관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 한 아버지에서 어린 아들이 된 관객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영화는 삶에 치여 방황하는 한 남자의 어린 시절 결핍을 제주도의 함박눈 처럼 소복하게 채워주었다. 어린 관객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져버린 둑 사이에서 점차 비집고 나오는 강물처럼 쏟아냈다. 아버지가 말했다.  


“힘들었지? 괜찮아. 밤이 왔어. 자 이제 울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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