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대화하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찾아온 우울은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에는 바쁜 일상에 가려진 것들이었다. 삶이 단조롭다 할지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을 상담 선생님과 같이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라는 간절한 목마름 때문에 뻥 뚫린 마음의 구멍을 바쁜 일상으로 다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해답을 찾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항상 일정이 꽉 차다 못해 넘쳐 흘렀다. 그래서 시간은 내가 나아가고 싶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계속 등을 떠밀었다. 퇴근을 해도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하루가 빡빡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일상이 단조로운 지금 나는 무엇으로 시간을 채워 나갈 수 있는지 이 작은 동네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난감했다. 그래서 세심의 안경을 끼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아파서 며칠 집에서 쉬었던 적이 있었다. 집에만 있기에는 지루해서 어느 정도 회복된 아이를 데리고 동네 작은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 나란히 앉아 큰 아이와 책을 읽었다. 큰 아이는 동화책을 읽고 나는 ‘마음 챙김’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때 ‘마음 챙김’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편안해 지니 졸음이 스르르 몰려왔다. 자다 깨다 읽다를 반복하며 늘어진 일상을 즐겼다. 회사 다닐 때에는 갈 수 없었던 동네 작은 도서관이 내 일상에 적립되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거의 7년만이었다. 읽음으로써 내 마음 속 공허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운명이었던 것일까? 다시 시작한 독서는 ‘쓰기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책을 빌리기 위해 작은 도서관 웹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브런치 작가 도전’이라는 강좌가 눈에 들어왔다. 강좌 시간도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강좌 설명도 읽지 않은 채 바로 신청했다. 그렇게 화요일 오전의 공허가 글쓰기 강좌로 채워졌다.
또 도서관에 갔다가 한 켠에 쌓여 있던 강좌 팜플렛이 눈에 들어왔다. 매주 수요일 동네 주민센터에서 개최하는 ‘그림책 하브루타’라는 강좌였다. 또 하브루타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접수 시작일 주민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강좌를 신청했다. 수요일 오전의 공허도 그런 식으로 채워졌다.
기다리던 브런치 작가 도전 강좌 첫날이었다. 주민센터 작은 도서관 강좌가 얼마나 퀄리티 있겠냐는 생각을 하며 대충대충 열매를 먹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사실 ‘브런치’라는 단어가 지금 내가 글을 발행하고 있는 ‘브런치 스토리’를 뜻하는 지도 몰랐다. 난 그저 아침에 가볍게 글을 쓰나 보다 하는 허망한 추측을 했을 뿐이었다. 더구나 한 3명이나 오겠지 하고 작은 도서관의 강좌 기획력을 얕잡아 보는 커다란 실수를 자행했다.
강의실에는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남자는 3명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었다. 젊은 강사님 한 분이 서 계셨다.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앉자 마자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이윽고 강좌가 시작되었다. 그제서야 브런치의 뜻(브런치라 쓰고 브런치 스토리라 읽는다.)을 알게 되었고 각자의 글을 가지고 토론도 해야 된다는 무시무시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그저 동네 작은 강좌니까 뭐가 어렵겠어' 하며 마음을 달랬다. 네이버 까페에 닉네임을 정해 가입하고 까페에 나와있는 간단한 질문에 ‘간단히’ 답했건만 자기소개 겸해서 이것을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커다란 착각의 쇠망치가 ‘너 인제 폭망했어’하며 내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렇게 해서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처절한 반성의 메아리였다.
“죄송해요. 이렇게 진지한 자리인지 몰랐어요. 정말 부담없이 가볍게 왔는데…”
하지만 강사님은 마법을 부렸다. 대충 적은 나의 자기 소개 및 앞으로의 글쓰기 계획에서 주변 몇 안되는 육아휴직 중인 남성이라는 희소성을 글의 주제로 이끌어 내도록 했다. 그리고 주변 동기들의 의외로 좋은 반응은 내 가슴을 실로 오랜만에 설레게 했다.
하브루타 강좌에서도 나의 희소성은 빛이 났다. 강의생들은 모두 적게는 유아 많게는 청소년의 자녀를 둔 어머니 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남성인 나는 눈에 쉽게 띄었다. 대부분의 질문은 나의 것이었다. 이정도면 난 ‘관심종자’라는 요즘 말로 칭해도 된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글쓰기 강좌나 하브루타 강좌, 수강생들과의 대화 등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글쓰기도 좋고 강좌도 좋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관심 받는 것도 좋다. 일상이 작은 빛들로 서서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일주일 중 2일은 동네에서 '품격 있고 수준 높은' 강좌를 듣고 나머지 요일은 글을 쓰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틈틈이 상담 선생님과 나의 불안과 공허의 기원과 치유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글쓰기 강좌에서 각자 쓴 글을 가지고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이었다.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고통은 강좌 동기들과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치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브런치 작가 도전 강좌를 통해 난 실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로 승인되는 순간 뇌에서 뿜어 나오는 성취의 도파민은 잠시 나를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일상을 다시 여러 일로 채운 것은 예쁜 천으로 공허와 불안의 얼굴을 잠시 덮어 가리는 임시 방편 일지 도 모른다. 언젠가 알 수 없는 방황의 근원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그 천 쪼가리를 날려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라도 알 수 없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현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 ‘지금의 나’는 조금이나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