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약속' 따라하기
이번 글은 큰 아이와 가졌던 최근의 추억에 대해 훈훈하게 써보고자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글을 쓰기로 한 당일 큰 아이의 비명 7연타를 당하고 나니 차마 부드럽게 글을 시작하기가 힘겨웠다. 아이들의 분노에 찬 비명이란 운전을 하다가 느닷없이 듣게 되는 짜증에 찬 자동차 경적소리 와도 같다. 난 그런 경적 소리를 한번도 아니고 계속 듣게 되면 본능적으로 급 브레이크를 밟고 차에서 내려 어떤 xx인지 보고 싶어 진다.
우리 큰 아이는 다소 예민한 아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 우리 부부는 한동안 눈물로 밤낮을 보냈고 점점 커가는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언어 발달도 다소 느려 24개월이 지나서야 말문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의 언어발달을 위해 발달 바우처를 받아 여러 아동 발달 센터와 병원을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키우는 동안 특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 특히나 자동차 바퀴를 너무 좋아했고 질문도 지나치게 많았다. 그래서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건 아닌지 아버지인 나를 많이 걱정시켰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동차를 너무나도 좋아한 아이였고 질문은 7살이 된 지금도 많이한다.
힘들게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키웠기에 우리 부부는 매일 파김치가 되었고 그래서 둘째는 낳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큰아이가 4살 정도가 되었을 때 아예 생산직에서 서비스직으로 이직(이라 쓰고 간단히 정관 수술이라고 읽는다.)을 하기로 하고 병원 날짜까지 잡았었다. 하지만 그 놈의 크리스마스와 와인의 조합은 둘째 임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고 보니 사고 친 사람들이 겪게 되는 막막함과 당황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경제력과 가정의 테두리를 갖춘 나조차도 앞날에 대한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막 커리어를 다시 시작한 아내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고 이제 좀 숨통이 트이네 하던 나도 고난의 시간을 다시 시작 하려고 하니 한숨만 나왔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태동소리를 들으니 아내의 원망(왜 나만 원망했을까?)은 고요히 잠들었고 내 가슴 속에서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샘솟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둘째를 하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집에 와서 큰 아이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이제 동생과 공유하게 된 것도 모른 채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부디 동생이 태어났을 때 상처를 적게 받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둘째가 태어나는 날 할머니에게 맡겨진 큰 아이는 이런 질문을 할머니에게 남겼다.
“할머니,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는 누구랑 자?”
그렇게 둘째는 태어났고 역시나 큰 아이의 히스테리는 성난 뱀이 머리를 치켜 올리 듯 시작되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며칠 되지않아 큰아이는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신발이 안 벗겨 진다며 엉엉 울었고 공원에서는 베짱이가 잡히지 않는다고 목 놓아 울며 떼를 썼다. 하루에도 너무 자주 우니 나도 덩달아 주저 앉고 싶었다.
큰 아이와 둘째는 터울이 4살이나 났다. 터울이 커서 형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형제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터울이 큰 것이 문제였다. 둘째는 스스로 걷기 시작하자 형에게 당당하게 본인의 몫 이상을 요구했고 도덕이라는 것을 겉으로 라도 깨우친 형은 아무 말없이 본인의 몫을 스스로 내놓았다. 그 모습이 하도 답답해 큰 아이에게 내주기 싫으면 동생을 한 대 쥐어박으라고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저씨 미쳤어요?’하는 듯한 눈빛 뿐이었다.
둘째가 28개월이 되었을 때 영화 약속(민병훈 감독, 민시우 주연)을 보고 왔다. 영화 속 주연인 시우처럼 큰 아이와 동시 짓기 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큰 아이는 아래 그림과 같이 동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은 우주다. 그 크기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만큼의 잠재력을 지녔다.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서 밤하늘의 반짝이는 은하수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