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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날부터 마지막까지 아내였다

한 사람을 기억하며,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하루

by 시니어더크


어제는 장맛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아내가 있는 공원에도 조용히 빗줄기가 내려앉았겠지.
혼자서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며칠 전, 조심스럽게 놓고 온 핑크빛 장미꽃은
비에 젖어 많이 상했을까.
아침부터 마음이 자꾸 그곳으로 향한다.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아내가 더 가까이 느껴진다.


촉촉한 공기,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
옅은 햇빛이 살며시 드는 오늘 같은 날엔
아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고요한 하루가 흐른다.


딸과 아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미래를 당신과 함께 이야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그들의 시간 속에는 아내 없는 풍경이 그려지겠지.


조용한 주방,
길게 놓인 6인용 식탁 한가운데
노트북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예전에 아내의 자리에 앉아
나는 이렇게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오늘 밤은,
우리 둘의 시작을 떠올려 본다.


기억이 날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다방의 이름은 이제 희미하지만
그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연한 베이지색 코트, 조심스레 넘던 문턱,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과
수줍은 미소, 그리고 작게 인사하던 그녀의 목소리.


그 순간, 마치 늦은 봄바람처럼
내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괜히 거울 앞에서 옷깃을 다듬고
머리 모양을 몇 번이나 손질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에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려
은근히 멋을 부렸던 날.


커피잔만 만지작거리며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날 이후 우리의 만남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퇴근 후, 저녁노을이 남아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마시던

따뜻한 캔커피,
우산 하나를 나눠 쓰며 내리던 초가을 비,
둘이서 처음 가본 마로니에 작은 극장에서 보던 연극 한 편…
모든 것이 그녀와 함께였기에 특별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를 향한 마음은 단단해졌고,
어느 날엔가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랑 결혼해 줄래요?"라고 물었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 준비로 분주했던 날들,
신혼방에 작은 커튼 하나 다는 일조차도 설레었지.
장보기, 요리하기, 함께 집안일을 나누며
우린 '둘이 하나 되는 법'을 배워갔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그 모든 시작이 바로
그 다방, 그녀의 첫 미소에서 비롯되었음을
오늘 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되새겨 본다.


이제 아내는 내 곁에 없지만
그날의 미소, 그 눈빛 하나하나가
지금도 내 삶을 따뜻하게 비춘다.


오늘 밤은
그 기억 하나로도 충분히 따뜻하다.

'정숙'
그날 당신을 만나
나는 정말 행복했다.

내일도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며 하루를 살아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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