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이후, 다시 손을 잡고 걷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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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긴 병상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건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병원의 공기를 품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촉촉한 습기와 함께 낯선 공기 냄새가 들어왔다. 그 냄새 속에는 병실의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고, 그것이 내 마음을 다시 아득하게 했다. 완치라는 말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의사는 "관해 상태"라 했다. 병이 잠잠해진 상태, 그러나 언제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르는 불안한 휴전.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지 못했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지 모를 어둠을 경계하듯, 퇴원과 동시에 외래 진료일을 서둘러 잡았다.
창문 밖 빗소리가 점점 굵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산을 챙겨 들었다. 집 안에만 머무르면 오히려 몸이 더 아파진다는 걸, 지난 세월이 이미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걸으며 공기를 마시고 바람을 느껴야만 했다. "비가 조금 오지만 괜찮아요. 잠깐만 나가요."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공기는 눅눅했지만, 빗방울이 이마에 닿는 느낌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해 비는 갑자기 거세졌다. 우산을 휘청거리게 하는 바람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의 공기엔 묘한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조금 힘들어요." 낮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나는 얼른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옆동에 사는, 아내에게는 오빠이자 나에게는 처남이 되는 목사님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조용히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이 가엾은 딸의 몸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그 기도는 마치 빗소리 속에 스며드는 따뜻한 햇살 같았다. 창밖의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그의 기도 소리는 묵직한 울림으로 거실을 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오래전 병원에서 함께 울던 날들이 떠올랐다. 기도가 끝난 후 처남은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내.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니까."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비를 맞으며 돌아섰다. 남겨진 향긋한 커피 냄새와 잔잔한 빗소리, 그리고 아내의 미약한 숨소리. 그 모든 것이 한 장의 조용한 풍경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그날의 빗방울은 차가웠지만, 그 기도는 오히려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며칠 뒤, 오전 진료를 위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그 병원은 우리에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어쩌면 삶의 절반이라 할 정도로 중요한 수술과 치료를 하며 그곳에서 보냈으니, 어쩌면 또 하나의 집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병원 복도를 걸을 때마다 그녀가 수없이 오르내리던 그 길의 냄새가 발끝에서 되살아났다. 살균제 향이 스민 공기,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대기실의 의자, 그리고 늘 흐릿한 조명. 모든 것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나는 퇴원 날 미처 챙기지 못했던 보험 서류를 발급받으러 서류 창구로 갔다. 그 짧은 몇 분 사이에도 마음은 자꾸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내는 서관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소변을 제출한 뒤,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여전히 이른 아침의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병원 건물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마치 세월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결과를 기다리는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대기실 그녀의 옆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환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은 언제나 그랬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그 모든 풍경이 멀게만 느껴졌다. '부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 병이란 녀석은 그렇게 쉽게 등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언젠가 또 이 길을 걷게 되리라는 예감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울에 있는 교회 권사님이었다. "목사님 사모님이랑 병문안 가는 중이에요." 아내가 퇴원한 걸 모르고 병원으로 무작정 오고 계시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실 문이 텅 비어 있었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마침 외래 진료일이라 병원에 와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시 후 권사님 일행이 병원 로비에 도착했다. 손에는 주스와 김, 그리고 작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이고, 이제 좀 나아지셨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한 권사님, 어서 완쾌되셔야지요." 사모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아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연신 "번번이 신세만 져서 송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분들의 온정이 고마워서, 또 미안해서 마음 한편이 시큰해졌다. 삶이 고단할수록 사람의 마음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걸 그날 새삼 느꼈다.
진료 시간이 되어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피 수치는 퇴원할 때와 같습니다. 수혈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는 듯했지만, 이내 이어진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신장 수치가 조금 높아요. 3.91이면 주의하셔야 합니다. 수분 조절 잘하시고 피로를 최소화하세요." 입원 시에는 계속 투석을 받았는데 퇴원하면서 투석을 끝냈었다. '이러다가 다시 투석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이 밀려왔다. 그의 설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퇴원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그제야 실감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하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 우리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를 또 이렇게 버티며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기도이자 사명처럼 느껴졌다.
진료를 마치고 병동에 들렀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환자로 머물던 자리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 한쪽에는 고요한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아내의 긴 입원 기간 동안 그 병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품어주던 작은 세상이었다. 매일같이 오가던 간호사들의 걸음소리, 새벽마다 들리던 기계의 삑삑거림, 그리고 미약한 희망을 담은 환자들의 눈빛까지- 모든 것이 그곳의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지하 제과점으로 내려가 작은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어 빵을 잔뜩 샀다. 봉투를 양손에 들고 다시 81 병동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간호사들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다음엔 꼭 건강한 모습으로 오세요. 아니, 가능하면… 다시 오시지 마세요." 그 말은 분명 따뜻한 위로였지만 내 마음에는 이상하게도 쓸쓸한 울림으로 남았다.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에 그 말이 아프게 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간호사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하얀 손끝이 점점 멀어질수록 마음이 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샤부샤부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한동안 병원식에 익숙해져 있던 아내가 모처럼 따뜻한 국물을 입에 대는 모습이 반가웠다. 그러나 그 평온도 오래가지 못했다. 식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얼굴빛이 급격히 하얘졌다. 식당 조명의 노란빛 아래서도 그 창백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진통제를 연달아 세 알, 그리고 잠시 뒤에 두 알을 삼켰다. 밤이 깊어지자 가슴에 붙인 진통 패치를 교체하고, 조혈제 주사 준비를 했다. 그 주사는 이제 내 몫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주사기를 손에 쥐었다. "조금만 참아요." 그녀의 팔을 잡은 손끝이 떨렸다. 피부는 유리처럼 투명했고, 혈관은 가느다랗게 파랗게 떠 있었다. 바늘을 찌를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찔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르듯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거실의 불빛이 조용히 떨렸다. 그 불빛 아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이렇게 견뎌야 할까. 그러나 또 동시에, 이렇게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날 밤, 주사기를 내려놓고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따뜻했다. 그 온기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휠체어 타고 나가요." 그 한마디에 집안의 공기가 조금 환해졌다. 며칠째 이어지던 비가 막 그친 뒤라, 창문을 여니 빗물 냄새가 상쾌하게 스며들었다. 논둑길로 향하는 바람에는 젖은 흙냄새와 푸른색의 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휠체어를 밀었다. 바퀴가 젖은 흙을 스칠 때마다 '철컥철컥' 소리가 났다. 공기는 아직 축축했지만, 오랜만에 마시는 바깥공기가 얼마나 달콤했던지, 아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긴 터널 끝에서 잠시 맞이한 햇살 같았다.
논둑길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향하던 길, 오래된 친구 부부가 찾아왔다. 물김치와 깻잎, 손수 만든 반찬들이 보자기 속에 따뜻하게 싸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입맛 돌게 먹어." 그 한마디에 마음이 뭉클했다. 아내는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 하며 손을 잡았다. 친구의 손끝에서 오래된 인연의 온기가 전해졌다. 잠시 후 우리는 해피가 있는 또 다른 친구네로 향했다. 그곳엔 우리 대신 해피를 돌봐주던 마음씨 착한 친구가 있었다. 문을 열자 해피가 꼬리를 힘껏 흔들며 달려왔다. 그 작은 몸이 온통 기쁨으로 부서질 듯했다. 그러나 아내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면역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감염의 위험이 아직 크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도 아내가 안아주지 않자 해피가 아내를 바라보았다. 둥근 눈동자 속에 억눌린 그리움이 가득했다. "엄마가 왜 나를 안 안아주지?" 그 눈빛이 말을 대신했다.
아내의 눈가에 이내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서 있는 채 해피를 바라보기만 했다. 불과 몇 걸음 남짓한 거리였지만, 그 거리가 두 사람의 마음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러나 해피는 그 거리마저 없애려는 듯 앞발을 들고 올라서려 했다. "같이 가요." 그렇게 말하는 듯이. 돌아갈 때 우리가 차에 오르자 해피는 차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간신히 떼어놓고 거실 안으로 밀어 넣자, 유리창 너머로 여전히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치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내의 어깨가 떨렸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창문 밖에서는 빗방울이 다시 흩날리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 속엔 해피의 숨결과 아내의 눈물이 함께 섞여 있었다. 닿지 못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다. 사랑은 그렇게, 닿지 못해도 서로를 알아보는 것임을 그날 해피가 가르쳐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고, 아들은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은 조용해졌다. 거실엔 아직 해피의 울음 같은 여운이 남아 있었고, 소파에는 아내가 피곤한지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식탁에 앉았다. 주방 쪽에서 냄비 뚜껑이 식으며 '딸깍' 소리를 냈다. 그 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 늘 마음을 짓눌렀다. 치료비가 쌓일수록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통장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다시 일해야지."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나이도, 세상도,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를 위해서, 나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날 밤, 조용한 집 안에서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아래 많지 않은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오래 전의 우리를 떠올렸다. 젊은 날,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리고 아직 병이 우리 집 문턱을 넘기 전의 시간들. 그 시절에는 몰랐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지금의 나는 그 평범했던 일상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가 누워 있는 소파로 갔다. 그녀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한 듯 뒤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예요. 우리 꼭 그렇게 살아요."
대답은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 그녀의 숨결이 잔잔히 들려왔다. 그 숨소리 하나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위로였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그 고요함 속엔 많은 것이 있었다. 그녀의 고통과 인내, 나의 두려움과 감사,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 있는 이 순간의 기적 같은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숨결 사이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며칠 후 주일, 아침부터 또 비가 내렸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유리 위에서 만나고 흩어졌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늘은 그냥 쉬자고 말하려 했지만, 아내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그래도 나가요. 휠체어 타고 한 바퀴만 돌아요."
그녀의 눈빛에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말없이 우산을 챙겨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덕계역 근처 논둑길은 지난 비로 촉촉했다. 논은 짙은 초록빛으로 숨 쉬고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벼잎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논둑 사이로 잠자리들이 낮게 날았고, 개구리울음이 물안개처럼 퍼져왔다. 아내는 잠시 바람을 마시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땐 저 논두렁 따라 달리던 기억이 나요."
그녀의 웃음은 오랜만에 보는 여름 햇살 같았다.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잠깐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예배당으로 향했다. 몸이 무거웠을 텐데도 아내는 자리에 앉아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음색은 깊고 단단했다. 예배당 안의 공기가 묘하게 따뜻해졌다.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끝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도 아내는 오후 예배까지 드리고 가자고 했다. 나는 말리지 못했다. 그녀에게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그녀의 얼굴빛은 점점 창백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통제를 세 알 삼키고 소파에 몸을 눕혔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말 대신 손끝으로 기도를 올리듯, 그녀의 아픔이 내 손끝을 타고 옮겨오기를 바랐다.
그날 밤, 열이 올랐다. 체온계 숫자가 38도를 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침과 가래가 섞인 거친 숨소리,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 급히 병원으로 전화를 걸자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열이 더 오르면 바로 응급실로 오세요."
전화를 끊자 처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몸도 회복 안 됐는데 교회를 왜 가요!"
그 말이 옳았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을 나는 안다. 그녀에게 예배는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믿음의 숨결이자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나는 물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주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열이 남아 있었다. 그 손끝 아래서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이대로 열이 더 오르지 않기를, 하룻밤만이라도 편히 잠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깊은 밤, 창밖에는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퇴원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걸어야 했다.
비에 젖은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빛은 작고 흔들렸지만, 꺼지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 마음속의 희망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비춰주는,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빛이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창가에 앉았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기도처럼 들렸다. 내 마음속에서도 잔잔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하나님,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비록 아프더라도 아주 조금만 아프게 해주시고, 언제나 제 곁에서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눈을 감자, 어둠 속에서 또다시 그녀의 숨결이 들려왔다. 살아 있음의 증거,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야 할 내일의 약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