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느리게 오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병원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흐름은 단숨에 멈춰 섰다. 그 공간에는 예전의 공기와 냄새, 그리고 아내와 함께 버텨왔던 시간이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그 무게를 피해 지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병원이라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시간을 거두어 가고, 지난날의 마음을 조용히 불러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회복을 향해 걷고 있다고 믿던 날들 사이로, 오늘도 어김없이 병원의 하루가 끼어들며 걸음을 잠시 붙잡아 세웠다.
몸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산책을 이어가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호흡을 고르고, 스스로의 속도를 조절해 보며 하루의 리듬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몸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찾아오곤 했지만, 어떤 날은 예고도 없이 지난날의 힘겨운 과정이 불쑥 떠올라 마음을 크게 뒤흔들기도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오래전부터 잡아두었던 통원 진료일이 다가왔고, 한여름이라 해도 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시각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가는 길 창밖에는 비가 내내 쉬지 않고 떨어졌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은 굴러 내릴 때마다 길게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고, 그 모습은 마치 먼 길을 흘러가는 강물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라디오에서는 지난번 스쳐 지나간 볼라벤 태풍에 이어 또 하나의 태풍이 북상 중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도로 위의 분위기는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흐린 하늘은 낮은 색감으로 하루 전체를 눌러놓은 듯했고, 차량들은 앞차의 작은 움직임에 몇 번이고 속도를 줄이며 느린 리듬으로 움직여갔다. 그 더딘 움직임 속에서 비와 바람, 계절의 냄새가 차 안으로 은근하게 스며들었다.
병원 1층 장애인 주차장에 도착하자 비에 젖은 바람이 먼저 스쳐 와 차가운 기운을 안겨주었다. 트렁크를 열어 휠체어를 천천히 꺼냈고, 아내를 조심스레 앉힌 뒤 엘리베이터 홀을 향해 밀어갔다. 그 순간 병원 특유의 냄새가 어김없이 코끝을 스쳤다. 소독약의 날카로운 향, 사람들의 희미한 숨결, 오래된 공기의 온도 같은 것들이 뒤섞여 묘하게 차갑고 두터운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병원이란 공간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속에는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 묵직한 마음을 들고 오고 또 들고 돌아갔다. 아내와 나는 그 수많은 사연들 사이에서 언제나 한몫의 시간을 조용히 나누어 쓰고 있었다.
서관 1층에서 접수와 채혈을 마쳤다. 익숙한 절차였지만 매번 긴장감은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찾아왔다. 동관 영상의학과로 이동해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이어 이비인후과에 들러 진료를 받았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정도였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오늘 하루의 무게를 잠시 덜어주는 듯했다. 코막힘을 완화하는 약 두 가지를 처방받고 나오자 아내의 표정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아픈 이가 잠시라도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은 그 숨결 하나로도 다시 하루를 견딜 힘을 얻게 된다.
두 시간 가까운 기다림 끝에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눈을 잠시 감아 보니, 예전에 아내와 함께 이 복도를 오가던 시간들이 겹겹이 포개지듯 다가왔다. 이곳은 단순히 검사실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미래를 가르는 문장들이 적힌 종이를 향해 걸어가던 지난날의 마음, 수없이 반복했던 발걸음, 긴장과 기도와 희망이 한꺼번에 얽혀 있던 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자리였다. 숫자로 출력된 검사 결과는 늘 우리의 내일을 미세하게 흔들었고, 그 앞에서 마주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은 말없이 서로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조용한 긴장 속에 잠겨 있었다.
교수님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많이 떨어져 있어 적혈구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 들어온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안쪽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툭 떨어지는 듯한 울림이 일었다. 이 병은 여러 가지 증상이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스스로 혈액을 유지하지 못하는 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늘 다른 문제였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마음의 무게는 조금씩 다른 결로 내려앉았고, 그 무게는 들을 때마다 다시 처음과 비슷한 자리에서 시작되곤 했다.
서관 5층 주사실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바로 수혈을 시작하기는 어려워, 먼저 예약되어 있던 내분비내과 진료를 받기로 했다. 의사는 스테로이드 복용을 이제는 조금씩 줄여보자고 말했다. 매일 아침 반 알씩 삼켜오던 약이었고, 그 작은 알약이 어느 날은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몸의 신호를 더 세심히 들여다보며 조절해야 할 때라는 권고였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의 상태를 생각하면 약을 줄인다는 결정조차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그 말 앞에서 아내의 마음도 잠시 흔들린 듯 보였다.
다시 주사실로 올라왔을 때 벽시계는 어느새 오후 3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적혈구 2팩을 모두 맞고 나니 창밖의 빛은 이미 기울어 있었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6시가 되어 있었다. 가슴에 설치된 중심정맥관을 헤파린으로 소독한 뒤 병원을 빠져나왔을 때는 저녁 7시 반에 가까웠다. 하루라는 시간이 고스란히 병원이라는 공간에 흡수되어 버린 듯한 날이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수혈은 언제나 그렇듯 당장의 힘을 주는 절차가 아니었다. 대략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몸 깊은 곳에서 서서히 기운이 차오르는 법이었다.
헌혈증을 챙기지 못해 수혈 비용이 더 들었다. 다음번 진료 때는 서랍 속에 넣어둔 헌혈증을 반드시 챙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오갔지만, 앞으로는 2주 간격으로 오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뚜렷한 변화는 아직 없었지만, 몸속에서는 조금씩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서 아주 작은 희망이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전날 밤, 아내는 어깨와 손이 저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되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상을 이어가려고 애썼지만,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과일 몇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아픈 사람에게 하루란 유난히 길고 고요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곁에 머무는 이의 마음도 자연스레 그 느린 흐름을 함께 견디며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며칠 전, 가까운 뒷산을 올랐다.
정상까지는 아니었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은 임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휠체어를 밀며 오르다가 경사가 완만해지는 구간에서는 아내가 잠시 내려 걸음을 옮기기도 했고, 다시 힘이 빠지면 휠체어에 앉아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 올라갔다 멈추고, 다시 걷고 밀어주는 이동의 리듬 속에서 아내의 숨결과 발걸음이 예전보다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등산로 양옆으로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어 늦여름의 공기를 깊게 머금고 있었고,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가 남아 있으면서도 한결 부드러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햇빛은 여름의 마지막 기세를 잔뜩 머금은 채 목덜미를 뜨겁게 스쳤지만, 그 열기 사이로 가을의 기척이 엷게 스며들고 있었다. 계절은 어느새 8월의 장막을 거두고 9월을 향해 조용히 넘어가는 중이었다.
정우마트에 들렀을 때는 태풍의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계산대와 진열대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어딘가 묵직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때 마침 큰 처남을 우연히 만났다. 교회 점심 준비를 위해 오징어볶음 재료를 사러 온 길이라 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처남은 아내,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을 위해 포도 한 박스를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 평소 과일을 즐기지 않던 아내가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포도를 잘 먹고 있었는데, 그 작은 변화를 처남은 금세 눈치챘던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배려였고, 그 마음이 조용하지만 깊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의 저녁은 포도와 빵으로 간단히 대신했다. 딸은 학교에서 돌아와 깊이 잠들어 있었고, 집 안은 오랜만에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아내의 몸은 다시 저릿한 통증을 드러냈다. 아픈 사람의 밤은 유난히 길고 지치는 시간이었고, 그 곁을 지키는 이의 마음은 그보다 더 길고 더 깊은 어둠을 함께 건너가야 했다.
며칠 전 아침, 덕계역으로 이어지는 논둑길을 걸었다.
이른 시간의 공기는 아직 서늘했고, 들녘에서는 여름과 가을이 뒤섞인 듯한 향이 흐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데, 아내의 발목에 미세하지만 분명한 힘이 실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도락산 산행이 조금씩 근육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발끝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그날따라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고, 그 조용한 힘이 내 마음을 한순간 멈춰 세웠다.
그 작은 걸음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회복이란,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조차
말없이 조금씩 쌓여 오르는 것이더라.
겉으로는 좀처럼 변화가 드러나지 않아 어떤 날은 불안이 더 크게 밀려오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어제와 오늘이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회복이 제자리에 머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아주 낮은 자리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힘이 보이지 않는 리듬으로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감지되었다. 그 변화는 크지도 않았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자기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를 다음 자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하루는 어느 순간부터 그 느린 속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변화가 오히려 더 오래, 더 깊게 쌓여간다는 사실을 조용한 깨달음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내의 회복과 나의 마음 역시 보이지 않는 가장 깊은 자리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그 변화는 손에 잡힐 만큼 분명하지도 않았고, 눈에 띄게 빠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지된 듯 보이는 그 조용한 움직임이 하루하루 쌓여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보이지 않던 힘이 어느 순간 삶의 안쪽에서 빛처럼 번져 오른다. 나는 그 빛이 다시 앞으로 걸어갈 용기를 건네주리라는 사실을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