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 아래에서 다시 시작된 하루, 그리고 예고 없이

회복과 불안이 맞닿은 자리에서

by 시니어더크


아침 햇빛이 유난히 강했던 날이었다. 창밖에서는 가을의 맑은 공기가 마치 한 겹 얇은 막처럼 집 안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딸을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는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침대에서 조용히 자고 있던 아내가 어느 틈에 일어났는지,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고 조용히 올라탄 것이다.


놀라움은 잠시였고, 이내 그 짧은 순간에 담긴 여러 감정이 차곡차곡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스스로 일어나 움직일 만큼 몸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그녀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어하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오늘의 이 작은 움직임 하나가 얼마나 귀한 기적인지 다시금 느껴졌다.


딸을 덕정동 제과점 앞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덕계역 근처에 있는 논둑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누렇게 영근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낮은 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보였다. 벼 이삭이 바람을 머금고 흔들리는 영상 같은 장면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함께 길게 늘어지는 것을 보며 말없이 걸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걸음을 멈추는 순간, 아내의 호흡이 조금 빨리 뛰고 있었지만 표정은 오히려 밝아져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병원이라는 세계에 갇혀 있던 삶에서 벗어나, 들판의 냄새와 바람의 온도를 온전히 느낀 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아침으로 사과 한 개를 나누어 먹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몸이 괜찮아 보이던 아내의 표정을 확인하며, 이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조금 더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도락산 아래 금광아파트 옆에 있는 가파른 등산길을 올랐다. 예상보다 경사가 있어 중간중간 숨을 고르기도 했지만, 길가에 길게 매어둔 밧줄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는 아내의 모습은 놀랍기만 했다.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견디던 사람이 지금 나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이 회복의 속도를 조심스레 지켜보며, 앞으로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산책과 오름을 반복하면 두 다리의 힘이 다시 붙고, 회복의 속도도 더 빨라지리라는 희망이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 잡았다.


산길 옆 텃밭에는 주민들이 가을작물을 거두고 있었다. 곡식을 털고, 잎을 정리하고, 푸성귀를 한데 모아 담는 그 모습이 어쩐지 통증이 물러간 뒤 찾아오는 평온과 닮아 있었다. 아내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도 언젠가는 텃밭 있는 작은 집으로 가면 좋겠어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양주 역시 나무와 산이 가깝고 공기도 좋지만, 아파트의 구조가 주는 답답함과 땅을 딛고 사는 삶의 감촉은 확실히 달랐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 묵혀두었던 작은 바람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고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내의 가슴에 설치된 중심정맥관, 흔히 히크만관이라고 부르는 장치를 소독하는 날이었다. 퇴원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와 철저히 관리를 해야 했다. 관 내부에 피가 굳어 막히거나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기에, 이 소독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보통 자동처럼 움직인다. 접수하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처방을 받으면 서관 5층으로 올라가 암주사실에서 헤파린으로 소독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일반의가 "일주일에 한 번 소독해 오셨냐"며 되묻더니, 마치 처음 듣는 사실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돌렸다. 교수에게 진료받고 싶은 환자들이 왜 특진비를 기꺼이 추가로 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결국 확인을 마친 일반의가 처방해 주었고, 우리는 늘 해오던 절차대로 소독을 마쳤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포천 광릉수목원 근처에 늘어선 음식점들이 보였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옛날 불고기백반 맛이 난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대를 품고 기다렸으나, 첫 한 점을 먹는 순간 서로 눈빛이 바뀌었다. 기대와 전혀 다른 맛. 잔치국수 또한 후추 냄새만 강하게 돌고 깊은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도 이보다는 잘할 텐데."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진통제 세 알을 먹고 누웠다. 오늘 하루만 여섯 알. 진통제를 완전히 끊을 날이 오긴 할까. 언제쯤 통증 없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물음들이 마음속에서 가만히 피어올랐다.


며칠이 지나 새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이날은 신장내과 진료가 있는 날이었고, 오전에는 셋째 형님 댁에 들러 깻잎과 고구마 줄기를 받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의 체온이 갑자기 38도를 넘기며 급하게 치솟았다. 기다릴 수 없었다. 형님 댁 방문을 취소하고 즉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도착 시간은 오후 1시 가까이. 암환자 전용 긴급진료실로 안내받았다. 맥박 측정 결과는 무려 168. 거의 달리기를 마친 사람과 비슷한 수치였다. 간호사들은 여러 차례 혈액을 뽑으려 했지만 잘 나오지 않았고, 결국 동맥을 찔러 어렵사리 얻은 조금의 혈액으로 검사에 들어갔다. 이어 엑스레이, CT촬영까지 순식간에 이어졌다.


저녁이 되어 종양내과 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왔다. 폐렴. 골수이식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고, 앞으로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은 폐렴 치료에 집중해야 했다.


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금식 중인 아내는 목이 타는 듯 물을 찾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은 더 붉어졌고, 체온은 계속 올라갔다. 항생제 한 병을 맞고 나서야 겨우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응급실의 밤은 길고도 고요했다. 보호자용 의자는 한 개뿐이고, 침상과 침상 사이의 공간은 너무 좁아 오래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아내 곁을 지키며 몇 시간을 버티다가,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레 자리를 떴다. 결국 같은 층에서 잠을 청하기 어려워 1층 원무과 대기실로 내려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얼마나 잤을까. 새벽 네 시쯤, 코끝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문득 눈이 떠졌다. 순간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나는 곧장 응급실로 뛰듯 올라갔다.


아내는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은 가빠 보였다. 나는 곧바로 찬물수건을 가져와 이마와 팔, 다리를 천천히 닦아주었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아내의 뜨거운 피부 온도가 손끝에 닿을 때마다 가슴이 조여들었고, 그녀를 혼자 두고 잠시라도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아팠다.


응급실에서의 밤이 깊어갈수록 또 하나의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곳은 종양내과 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긴급진료 구역이지만, 입원실은 늘 부족했다. 3일 안에 병동 침상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는 안내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 같은 환자는 치료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중소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불안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나는 새벽마다 간호사를 붙잡고 혹시나 빈 병상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아직입니다"였다. 아내는 고열에 시달리고, 나는 병실이 나는지 확인하는 마음으로 시간만 바라보았다. 응급실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길고 버거웠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마침내 간호사가 다가와 침대 하나가 비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긴 기다림 끝에 2인실로 옮겨갈 수 있었다.


입원실로 올라가자 비로소 본격적인 폐렴 치료가 시작되었다.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통해 세척과 조직검사가 이루어졌고, 기침을 유도하자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폐렴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 동안의 치료 끝에 아내는 마침내 퇴원했다.
병동 창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이전보다 한층 깊어진 계절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불안의 시간을 지나 맞이한 퇴원은, 가을빛처럼 맑고 아련하게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평온이 온전히 끝은 아니라는 것을.
지나온 시간을 겨우 한 고비 넘겼을 뿐, 또 다른 길이 조용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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