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서 보이는 길

작은 회복이 데려오는 하루의 빛

by 시니어더크

희뿌연 안개가 마을을 가만히 삼키고 있었다. 집의 지붕도, 길가의 나무도 흐릿한 윤곽만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낮이 되면 햇살이 이 풍경을 금세 지워내겠지만, 지금 바람은 이미 다른 계절의 냄새를 싫어 나르고 있었다. 여름의 끝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바람이 곧 겨울의 얼굴을 달고 다시 불어오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에 놓인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욱 매서운 계절이다. 추위는 삶의 가장자리를 압박하고, 허기는 등에 바싹 붙어온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오지만, 그 추위의 무게가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다. 그 단순한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생각들 사이로 현실은 여전히 놓여 있었다.
매달 나가는 돈은 쉼 없이 문밖으로 흘러나가는데, 벼룩시장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음을 끝없이 가라앉게 만든다. 비어 있는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그 상자에 넣을 적당한 무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 계절의 바람은 변해가는데, 내 생활의 공기는 쉽게 달라질 줄을 몰랐다.


아침에 일을 나서는 딸을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어제와 달리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평소 같으면 이미 일어나 세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하루의 일정을 조용히 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잠이 길었다. 나는 아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기 위해 깨우지 않았다. 그녀가 잃어버린 힘을 잠이 조금이라도 보충해 주기를 바랐다.


오전 열 시쯤 아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조금 입에 넣었지만,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엇인가 또 하나의 짐이 그녀를 누르고 있는 듯했으나, 나는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내가 감당해내고 있는 고통의 크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먹기 싫어하던 호르몬제를 반 알 삼켰다. 점심 무렵, 딸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본 뒤 아내는 삶은 감자 한 개를 점심으로 천천히 입에 넣었다. 허기를 겨우 채우는 양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한 입 한 입이 고통과 의지 사이에서 어렵게 건너뛰는 작은 다리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아내를 휠체어에 앉히고 도락산으로 향하는 경사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찻길을 따라 중턱까지 올라가는 약 2km의 길. 오후 3시 47분에 오르기 시작해 천천히 산바람을 맞으며 올라갔다. 아직은 늦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바람에는 분명 가을의 첫 기척이 스며 있었다. 계절은 언제나 사람의 걸음보다 먼저 움직였다.


중턱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내려오니 어느새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바람의 결을 느끼고 계절이 천천히 바뀌는 냄새를 맡으며 아내의 회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자연의 시간은 느리지만, 그 느린 시간이야말로 아내에게 필요한 속도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산에 오르기 전에 분식집에서 김밥 두 줄을 샀다. 집에 있던 포도 두 송이와 복숭아 두 개도 가방에 넣었다. 중턱에서 쉬는 동안 우리는 그 간식들을 꺼내 나눠 먹었다. 아침은 거의 먹지 않았지만, 이렇게 모아보니 양이 꽤 되는 편이었다. 조금씩이라도 먹는 양이 늘어나는 것, 그것만으로도 변화였다.


그때 마음이 속삭였다.
먹는 양이 조금씩 늘어나는 만큼, 운동도 꾸준해야 한다는 사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내가 틈틈이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떠올랐다. 산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천천히 가라앉을 때, 마음속의 그 다짐도 조용히 자리를 잡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딸은 이미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러 나가고 집 안에는 아무 인기척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산행은 휠체어에 의지한 걸음이었지만, 아내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천천히 몸을 씻어 내리자 그 땀과 피로가 조용히 풀려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가슴에 설치된 중심정맥관의 끝부분을 알코올 솜으로 깨끗하게 소독했다.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절차였다.


그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울렸다.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후배에게 보내준 일렉기타가 잘 도착했다며 안도와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월요일 일정이 빽빽해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한 채 강의를 들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멀리 지내는 만큼 식사라도 챙겨 먹길 바랐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는 당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향한 걱정이 조용히 가슴 한쪽을 눌렀다.


아내의 어깨에 붙어 있던 마약성 패치를 새것으로 갈아 붙였다. 사흘마다 교체하는 이 패치는 통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우리 집은 가정예배를 오래 쉬었지만, 오늘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께 전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가득했지만 정작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가장 중요한 아내의 건강을 위해 더 간절하게 기도했어야 했는데, 어느새 일상에 매몰된 채 안이하게 지냈다는 생각이 미묘한 회한처럼 남았다.


태양은 다시 뜨고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데, 아내의 몸에는 아주 작은 회복의 기척이 스며들었다. 아침부터 하늘은 맑게 열렸고, 뜨거운 햇살은 여전히 땅을 데우고 있었다. 그 열기 속에서 감과 대추, 사과가 익어가고, 논의 벼이삭들은 서서히 누렇게 물들어갔다. 계절이 변화하는 냄새가 공기 속에 깊게 배어 있었다.


아내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힘들어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을 조금 움직이면 통증이 다소 가라앉았다. 반대로 소파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아픈 곳이 늘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아내의 몸에 서로 다른 음영을 남기는 것이 눈에 선명히 보였다.


저녁 전, 다시 한번 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휠체어 대신 아내가 직접 걸었다. 층계가 많고 경사가 높은 길이었지만, 아내는 천천히 한 계단씩 밟으며 올라갔다. 중턱의 벤치에서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용기를 내어 내려오는 길에 나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조용히 확신이 자라났다.
참으로 많이 발전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출을 하려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는데, 이제는 힘들더라도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녁이 다가오자 해는 빠르게 사라졌다. 붉은빛은 힘을 잃고, 주변은 순식간에 어둑해졌다. 오늘 산에서 보낸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등산은 어떤 운동보다도 효과가 분명했다.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절과 비교하면, 아내는 지금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 변화가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내려와서는 냉장고에 남은 찬밥을 데워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아내가 숟가락을 들어 김치볶음밥을 입에 넣는 장면은 오래된 기억처럼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작은 한 숟가락이었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진통 패치도 변화가 있었다. 큰 사이즈 세 개에서 두 개 반으로 줄인 뒤로는 지나친 졸음이 사라졌다. 통증은 덜고, 깨어 있는 시간을 지켜주는 적당한 균형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또 다른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패치의 양을 줄이면 졸음은 덜해지지만, 그만큼 통증이 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날 아내는 여섯 알의 진통제를 삼켰다. 작은 약들이었지만, 그 숫자는 밤이 깊어질수록 내 가슴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오늘 아내가 한 계단을 올랐다는 사실, 그것이 내일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아픈 몸을 이끌고도 다시 산을 오른 그녀처럼, 우리에게도 아직 올라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비록 그 길이 더디고 좁더라도, 오늘의 작은 걸음 하나가 내일의 숨을 지탱해 줄 것임을 믿으며 어둑한 방 안에 조용히 등을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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