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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첫눈과 함께 전하는 마음

당신이 남긴 따뜻함

by 시니어더크

2024년 11월 26일(화) 비


어젯밤부터 시작된 비가 오늘 하루 종일 계속되어 겨울을 재촉하는 듯합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것만 같아요. 늦은 밤부터는 첫눈이 내릴 거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정숙 씨, 우리가 함께 보지 못하는 올해의 첫눈이네요. 조금만 더 버티었더라면, 하얗게 내리는 첫눈을 같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경춘공원에 잠들어 있는 당신의 분신 위에도 곧 눈이 내릴 것입니다. 차가운 화강석 위로 쌓이는 눈을 생각하면, 당신이 더욱 춥게 느껴져 걱정이 됩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은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이 따뜻했어요.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항상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성품 그대로, 하늘나라에서도 모두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그곳에서 먼저 떠나신 부모님과 오빠와 새언니와 함께 평화롭게 지내길 바랍니다. 저는 당신이 거기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제 꿈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신은 걱정 없이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저도 이제 더 이상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요즘 운동을 시작했어요. 매일 걷기도 하고, 실내 자전거도 타면서 기초 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근육이 잘 붙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운동하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더 단단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많이 고민 중입니다. 당신 없는 삶이 낯설고 막막하지만, 우리 가족이 당신이 남긴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들과 딸도 제가 외로울까 봐 자주 전화하고 챙겨줍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누구보다 단합이 잘 되었고, 비록 당신이 아팠지만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당신도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우리의 38년 결혼 생활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IMF 사태 때나 사업이 어려울 때에도 당신은 불평 한 마디 없이 항상 저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팠을 때 제가 더 정성껏 간호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정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당신 덕분이었어요.


오늘은 우리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왔습니다. 당신이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을 신고해야 했습니다.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겨우겨우 말을 하고 신고를 마쳤습니다. 당신의 주민등록이 정리되기까지 약 2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주민등록에 당신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됩니다. 이렇게라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고 있는 걸 보면,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정숙 씨, 당신도 남겨진 우리가 걱정되겠지만, 남은 우리 셋도 힘을 합쳐서 당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따뜻한 가정의 온기를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내일 새벽부터 경기도 전역에 많은 눈이 예상된다고 하네요. 출근 시간 빙판길이 우려되니 차량 운행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교통안전에 유의해 달라는 당부의 문자도 계속 오고 있어요. 올해 첫눈은 꽤 많이 내릴 것 같습니다. 당신도 그곳에서 첫눈을 보며 평온한 밤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얀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깊은 밤에, 당신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정숙 씨,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이 밤도 잘 지내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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