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김장 편지
2024년 11월 27일(수) 눈
아침 햇살에 눈을 떴을 때,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어요. 올해의 첫눈이 내린 날이었죠. 창밖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아름다웠지만, 첫눈치고는 너무 많은 눈이 내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차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니 10cm는 족히 넘는 것 같았어요. 다행히 새벽에 아들이 차를 지하주차장으로 옮겨둔 덕분에 눈 피해는 면할 수 있었지만요.
아들은 밤마다 이어폰을 꽂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음악 작업에 몰두하느라 늦게 잠들곤 해요. 그런 아들이 새벽에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차를 옮겨 놨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말없이 묵묵히 돕는 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당신이 늘 아들을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아이"라고 칭찬하곤 했는데, 정말 당신 말대로예요.
오늘은 김장 준비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아침 일찍 덕정동 국민마트에 가서 다발무와 김장 재료를 사려고 나섰는데, 야채 가격이 예상보다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깐 마늘만 2kg 사들고 나왔죠. 총각무는 세 단에 적당한 가격이어서 얼른 집어 들었지만, 다발무와 홍갓은 내일 리치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집에서 멀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국민마트로 갔는데, 리치마트보다 더 비쌀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런 어설픈 모습을 당신에게 말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웃으면서 "다음에는 괜히 고생하지 말고 그냥 가까운 데서 사 와요. 조금 더 비싸더라도 그게 더 이득이야"라고 말했겠지요. 당신의 그 따뜻하고 현실적인 조언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네요.
집에 돌아와서는 사 온 마늘을 다듬고, 쪽파와 대파를 깨끗하게 씻어 정리했습니다. 총각무는 잎이 어찌나 많은지, 겉의 두꺼운 잎은 떼어 말리기로 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잘 마른 시래기로 국을 끓이면 얼마나 맛있는지! 억척스럽게 떼어낸 잎들을 끈으로 묶어 발코니에 걸어두며, 깨끗하고 뽀송하게 잘 마르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치 소원을 비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 밤은 아마 편안하게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총각무를 소금에 절여 놓았는데, 밤 12시쯤 한 번 뒤집어줘야 하고 새벽 4시쯤에는 김치를 버무려야 하거든요.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재미있었을까요?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김장 재료를 다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셨을 텐데…. "올해는 꼭 같이 김장을 하자"라고 약속했던 당신의 환한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결국 혼자 김장을 하게 되어 아쉽고 쓸쓸하지만, 그래도 아들딸이 맛있게 먹을 모습을 상상하며 힘을 내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내일은 나머지 김장 속 재료를 사러 가고, 금요일에는 양념을 만들어 토요일에 본격적으로 김장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정숙 씨, 당신이 없는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어요. 당신은 늘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당신이 떠난 후,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사랑과 추억을 붙잡고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을 뿐이죠.
부디 그곳에서도 내가 김장을 잘하고 있는지, 혹시 어설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지켜봐 주세요. 만약 내가 실수를 하고 있다면, 당신의 텔레파시로 내게 알려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의 따뜻한 응원이 있다면, 올해 김장도 분명 맛깔스럽게 완성될 거라고 믿어요. 비록 당신 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담그겠지만, 당신이 항상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힘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비법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정성껏 김치를 담글게요.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밤, 부디 당신에게도 평화로운 밤이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저 하늘까지 닿기를 바라면서, 이 편지를 마칩니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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