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는 이 겨울, 나라마저 흔들립니다
2024.12.7 (토) 맑음
정숙 씨.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있다가 늦게 일어났습니다.
아들은 강의가 있다고 일찍 나갔고, 딸은 회사 동료들과 연천 한탄강으로 모임을 갔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 집을 비우고 나니, 집 안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 이렇게 혼자 남은 시간은 유독 길고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 없어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 김장 때 남겨두었던 무 한 개가 떠올랐습니다.
그 무로 무생채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했던 맛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무쳤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보았습니다. 김치 말고는 반찬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당신이 이것저것 밑반찬을 만들어 함께 나눠 주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밑반찬을 잘 먹지 않아 만들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빨래도 했습니다. 양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입는 옷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영하의 날씨였습니다.
아침에는 영하 8도, 낮에도 영상 1도를 겨우 넘었습니다.
바람은 찼고, 하늘은 맑았습니다.
집 안에서 하루를 조용히 보냈습니다.
오후에는 국회 생중계를 지켜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 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온 국민을 놀라게 했지요.
그 일 이후 국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먼저 김건희 여사 특검법 표결이 있었습니다.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되었습니다.
가결에 필요한 기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결국 특검법은 폐기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녀를 수사할 길도 막혔습니다.
이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을 포함해 단 3명만 표결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탄핵안 가결을 위해 필요한 200표는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표결은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 시간,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촛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탄핵”을 외쳤습니다.
정숙 씨.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지켜야 할 자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생명을 위해 헌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당신이 병상에 있을 때 이런 비상계엄이 내려졌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지금은 당신이 그 모든 혼란에서 벗어나 있는 곳에 계셔서 다행입니다.
정숙 씨.
그곳에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이,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요.
평소에는 정치 이야기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은 그저 분노의 기록이 아닙니다.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작고 조용한 외침입니다.
이렇게 당신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습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오늘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부디 평안히 계세요.
당신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