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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추운 겨울, 당신과 나누는 대화

추운 겨울, 당신과 나누는 대화

by 시니어더크



2024.12.9 (월)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8.8도.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추운 날씨입니다.

만약 당신이 있었다면,

이 날씨 속에서 웰니스 투석 병원까지

가야 했겠지요. 휠체어를 타고

그 긴 거리를 추위와 싸우며 가는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추위를 참 많이 타는 사람이었잖아요. 어쩌면, 당신이 이런 고통을 더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안심해야 할까요?

그런데도 내 마음은 이 차가운 겨울보다

더 시리고 공허합니다.



오늘은 웰니스 투석 병원에 들러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의 진료비 납부 확인서를 떼어 왔습니다.

딸의 회사에서 직원 복지 차원으로

의료비의 절반을 지원해 준다니 서둘러 준비했어요.

이어서 회천2동 행정복지센터에도 들렀습니다. 당신의 주민등록 관련 서류가 모두 정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제는 주민등록상에서도 당신의 이름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또 한 번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당신의 육신이 떠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록으로도 당신을 볼 수 없게 된다니요. 하지만 정숙 씨,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름도, 목소리도, 웃음도,

모든 것이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일부터는

남겨진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려고 합니다. 양주시청, 은행, 보험사, 국민연금공단 등

곳곳을 다니며 당신이 아이들을 위해

남겨둔 것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당신이 아프면서도 미리 준비해 둔 그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내가 잘 관리하고, 당신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결혼할 때 꼭 나눠줄게요.

이건 당신이 직접 해 주었어야 했는데,

결국 내가 대신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아이들을 위한 미래를

준비한 당신...

당신은 정말 천사입니다.



저녁에는 딸과 콩나물국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당신이 참 좋아했던 음식이었죠.

집 근처 콩나물국밥집에도 자주 갔었는데, 그곳에서 함께 웃으며 먹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처음으로 갔던 그때

한 그릇에 3,500원이었던 국밥이

이제는 6,000원이 넘었지요.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구나, 싶었어요.

아들은 학원에서 늦게 온다며

따로 밥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콩나물국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참 좋아했잖아요.

국물 한 숟갈에 담긴 그 따뜻함이 꼭 당신 같다고 느꼈어요.



딸은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내일 회사에 가야 하니 일찍 자야 한다며 서둘렀어요.

나는 설거지를 하고, 건조기에서 다 마른빨래를 꺼내 개면서 당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집안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당신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아직 내 곁에 있는 것 같아서, 그 생각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정숙 씨, 당신은 내게 언제나 천사였습니다. 아프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우리 가족을 끝까지 돌봐 준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당신은 천사로 내 곁에 머물며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요.



언젠가 당신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이 남겨 준 사랑을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밤도 당신이 평안하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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