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소토의 수도 마세루 여행(이라기엔 넘나 한 게 없는 것..)을 마치고 남아공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레소토를 종단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북쪽 국경인 마세루 대교를 지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갈 경우 레소토 영토를 우회하듯 빙 둘러가야 해서 집이 있는 이스턴케이프까지 3시간이 더 걸려 버린다.(총 7시간)
레소토 도로에는 휴게소가 없다. 어쩌다 나오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쓰러져가는 양철 판자들이 드문드문 식료품을 팔고 있을 뿐이다. 장거리 운전중 만나는 식료품 가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양철판 집들이 사실상 휴게소였던 것 같다.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하긴 했었지만 무서워서 스쳐 지나기만 했었는데, 이제 레소토를 떠나는 마당에 한번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한 개에 3랜드(약 250원)짜리 사과를 두 개 샀다. 도너츠 4개에 4랜드인 물가를 감안하면 꽤 비싼 가격이었다. 우리한테만 3랜드인지 원래 3랜드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흥정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모여 같이 찍었다. 뒤늦게 헐레벌떡 달려온 꼬마에게는 사탕을 선물해주었다.
남쪽에 눈이 많이 왔어요. 조심하세요.
레소토 사람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렇게 카차스넥(Qacha's Nek) 국경으로 향하는 길, 양철판자집 사장님 말처럼 저 멀리 산꼭대기에 쌓인 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눈 덮인 산들이 시야에서 사라질새라 수시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우리가 저 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건 아닐 거라고, 이건 마치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산을 보며 드라이브하는 그런 느낌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주변은 점점 눈밭으로 변해갔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는 것인가. 어느새 눈이 쌓인 산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마세루에서 출발 할 때까지만 해도 간밤에 눈이 내렸었는지는 상상도 못했을 만큼 거리는 말라 있었고 날씨는 맑음이었다. 그래서 눈밭에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도 행복한 생각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주변으로 눈은 쌓여 있지만 날이 적당히 따뜻했다. 언젠가 내 앞을 지나갔을 자동차들의 바퀴 자국을 따라 눈이 깨끗하게 녹아 있었다.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 눈밭을 지나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흔하겠는가?!
그러나 고도가 높아질 만큼 높아지자 역시 내게 그런 행운이 온전히 올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뒤로 있던 고립 동지들은 힘 좋은 4륜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곧 도착할 것으로 전해진 제설 차량을 기다렸다가 마저 가던 길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붕붕이, 폴로 비보는 매우 자그마한 꼬마 자동차였기 때문에 우리는 고심 끝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정했다. 제설차량이 언제 올수 있을지 믿음이 가질 않았고, 제설을 한다고 해도 과연 제대로 해낼지 믿을 수 없었다. 이미 3시간 정도를 달려왔는데 3시간을 돌아 다시 마세루 국경으로 가야 했고 거기서부터 다시 7시간 더 가야 했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어디냐 싶었다. 눈 구경하러 3시간 온 셈 치면 되는 것이었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레소토를 다시 종단해서 마세루 국경으로 안전하게 탈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