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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un 02. 2020

#4. 엄마와 아빠의 '온도 차'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아이가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엄마’다. 

병원에서 출산할 때 새벽에 부랴부랴 달려와 주신 당직의 선생님은 엄마의 산고를 헤아리며 아이와 엄마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사명을 다해 주셨다.


고통스러운 시간 가운데 힘들었음에도 아직도 생생한 예준이와의 가슴 벅찬 첫 만남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늘 엄마가 ‘제일’이었다. 

문득 생각나 뒤돌아봤을 때, 넘어져 울 때, 맛있는 간식을 먹을 때처럼 늘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함께 하고 싶었을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있다면 ‘아빠’도 있다. 아이가 막상 태어났을 때 허둥거리며 엄마와 양수 속에서 이어진 탯줄을 잘랐을 때도 아빠가 잘랐던 만큼 아빠에게도 아이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부모가정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이런 이야기가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차마 헤아리기가 미안한 사정이 있었다면 엄마가 혼자서아빠가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어떤 편견을 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아들 예준이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는다아빠의 마음이 섭섭할까 싶어 아빠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써 본다

예준이가 엄마의 양수 속에서 한참 놀고 있던 중에배를 매만지던 아빠의 마음이 이야기한다.     


“엄마 힘들지 않게 건강하게 쑥쑥 크다가 만나자.”     


엄마처럼 다정하게, 세심하지 않아도 툭툭 던지듯이 내뱉던 그 마음이  와 닿았을까 힘찬 발길질로 대답을 대신했던 예준이었다.


사회가 만들어 준 역할들에서 늘 치열하게 살아왔던 아빠에게는 예준이가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그런 아들이었다.

아빠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와의 시간이 더 많았던 예준이는 아빠의 치열함을 잘 헤아리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예준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수어 통역사가 ‘심장 박동 소리가 아주 우렁차요.’라고 통역하고 있었을 때,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초음파 기계에 보인 음파가 높이 떠올랐던 것처럼 예준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전했다.


가끔 밤마다 불러오는 배가 무거워지는 바람에 종아리 쪽이 쥐가 자주 났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늘 자면서도 주물러 주었다.      

“봄이(태명)야,  엄마가 다리 아프대. 살살해줘.”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의 시선에는 잠든 예준이가 마냥 귀여워 보였다.

그러다 보니 옷을 갈아 입고 예준이의 곁에 살짝 누워 예준이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힘들게 예준이를 재웠던 엄마는 혹여 아이가 깰세라 아빠의 마음을 미처 들여다볼 새 없이 등을 찰싹 때리며 말한다.     

“아이가 깰 것 같은데... 어서 나와!”
“좀 더 보고 싶은데...”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온도 차’는 극명하기도, 비슷하기도 하다.

아이를 대하는 자세도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다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부모의 사랑은 다를 수 없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늘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농인이라고, 청인과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다름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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