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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석 Feb 14. 2020

1. 대기업과 수출 주도적 산업의 그래픽디자인 (2)

(2)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 붐

(2)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 붐

대한민국 현대 그래픽디자인 역사에서 1세대 디자이너들이 이룩한 업적 중 하나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아이덴티티(Corporate Identity, CI)를 통해 시각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확립시켰다는 점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는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게 되면서 내수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로서 자신의 서비스나 상품을 세계인들에게 명확하게 알리고 기억에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미국의 선두적인 기업들은 기업 이미지 통합작업을 수행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Paul Rand)의 IBM(1956년), 웨스팅하우스(1960년)등 브랜드 이미지 통합 작업을 통해 CI에 대한 인식이 점차 넓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이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이를 홍보하기 위해 파오스 사의 나카니시 모토가 '데코마스(DECOMAS)'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며 CI의 필요성을 알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76년에 조영제가 일본에서 유행하던 브랜딩의 초기 개념인 데코마스를 들여와 한국에서 ‘데코마스전’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기업과 일반 시민에게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념을 알리게 되었다.


초창기에 CI를 도입한 기업은 주로 대기업과 은행권이었는데, 그 이유는 디자인 개발에 드는 막대한 자금을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CI가 기업의 주요 고객인 소비자에게 빈번하게 노출되어 일관된 디자인을 통해 기억에 오래 남고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주요 대기업이나 단체가 브랜딩을 개발하면 월간《디자인》에서 특집으로 여러 면에 걸쳐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그림 13> 동서식품의 C.I.P. 개발 소개, 조영제, 1985.
<그림 14> 롯데칠성음료의 C.I.P. 개발 소개, 권명광, 1987.
<그림 15> 서울신탁은행의 C.I.P. 개발 소개, 안정언, 1988.

당시 CI 개발은 로고타입 디자인뿐 아니라 전용서체, 패키지 디자인, 의상과 차량 디자인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이것을 규정집으로 제작하여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관리해야 하는 등 고도로 숙련된 디자이너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몇몇 대학교수와 유명 디자이너들이 주도하였다 <그림 16-18> (조영제는 (전) 서울대학교 교수이며 CDR 대표, 권명광은 (전) 홍익대 총장 (현) 상명대 석좌교수, 안정언은 (전) 숙명여대 교수이며 (전) 올 커뮤니케이션 대표, 김현은 디자인파크 대표이다). <표 1>


<그림 16-18> 월간《디자인》1992년 1월호에 소개된 CI 연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에 CI가 도입되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조영제의 '데코마스'전과 그의 초기 작업물이었다. 데코마스(DECOMAS)란 Design Coordination As a Management Strategy의 합성어로서 '경영 전략으로서의 디자인 통합'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당시 문헌들을 살펴보면 70년대 말에는 주로 기업 브랜딩에 관련된 용어로 '데코마스'라는 단어가 쓰였고, 80년대에 와서야 'CI' 혹은 'CIP'라는 용어로 확립된다. 처음 데코마스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나카니시 모토 역시 일본에 CI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서 자료를 조사할 때조차 이에 대한 명칭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일본 기업이 이해하기 쉬울만한 언어로 명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CI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으로도 초기에 개념을 받아들이고, 디자인을 기업 경영에 적용한 국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또한 CI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 프로젝트의 규모와 위상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는 업적도 있다. 기존의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는 특정 행사의 포스터나 광고, 포장디자인 등 기업 경영의 일부로서 개개의 프로젝트로 분리되어있어 규모도 작고, 그 가치도 상대적으로 인정받기 힘들었으나, 심벌과 로고타입 디자인뿐 아니라, 각종 그래픽과 패키지, 의상, 매장 인테리어 등 기업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된 이미지를 통해 경영 전략을 제시하는 분야로 격상시켰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록 초기에 제작된 일부 CI의 형태가 일본과 미국 등 외국 기업의 그것과 많이 닮아 표절 의혹에 대한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 개발되어 4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CI들은 높은 조형성을 기반으로 개발된, 노련한 1세대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표 1> 1세대 디자이너들의 주요 브랜딩 개발 프로젝트



우리가 어떠한 사물 혹은 대상을 지칭할 때, 그 단어가 지니는 의미나 뉘앙스를 통해 화자가 가진 개념이나 태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는 '디자인'을 부를 때 '산업 디자인', '공업 디자인', '상업 미술'등등으로 지칭했었고, 지금도 아직 많은 대학교에서 이러한 명칭의 학과를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특징에 대한 본 연재에서 첫 번째 챕터로 선정한 '대기업과 수출 주도적 산업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제목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입장에서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영역을 본격적으로 맞이한 계기는 수출을 통해 외화벌이에 총력을 다했던 대기업이 산업의 역군으로서 디자인을 활용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레이먼드 로위가 '우수한 디자인'을 '매출 상승'과 동일한 표현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미국의 실용주의적 입장이 한국인에게 그래픽 디자인의 첫인상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전반적인 디자인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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