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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21. 2019

공원에서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는요.

  “너~무 덥다!”


  한참 땡볕에 서서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하느라 얼굴은 뜨겁고 목은 타들어 갈 만큼 너무 말랐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피커딜리 쪽으로 걸어가다가 쏟아지는 햇빛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공원 앞 작은 노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라도 사 들고 가기로 했다.


  자그마한 노점에는 이미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 뒤로 우리 역시 줄을 섰다. 줄이 어서 줄어들기만을 바라며 우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쇼윈도의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고심하고 있는 앞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하나하나 가리키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움직였다. 


'음.. 샌드위치 맛있어 보이네...'


  앞사람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며 샌드위치 메뉴를 보고 있노라니, 이상하게 갑자기 배가 고팠다. 원래는 갈증만 해소되면 그만이었는데. 샌드위치가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음료만 사려고 했던 우리는 의식의 흐름대로 콜라 두 잔과 샌드위치를 샀다. 그리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금액의 샌드위치 두 종류와 얼음이 들어있지 않은 코카콜라 두 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공원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가기로 했다. 콜라를 홀짝이며 들어온 세인트 제임스 파크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왕립 공원인데 천여 마리의 새가 서식하고 있어서 조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공원이기도 하다(그만큼 새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우리나라에도 흔한 비둘기에서부터 거위, 오리, 백조 친구들과 함께 공원을 거닐 수 있는 곳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넓은 잔디밭에 앉아 함께 온 이와 대화를 하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공원 곳곳에는 현지인부터 관광객까지 많은 사람이 나와 그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특히 잔디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야말로 ‘런더너’의 모습이었다. 우리에게도 샌드위치가 있겠다, 우리도 저들처럼 행동으로만 옮기면 되는 거였다. 


“우리도 런더너가 되어보자!” 


  괜히 들뜬 마음을 품고 적당한 자리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공원 어디에 앉더라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샌드위치 박스를 열어 한입 먹으려는 순간, 누군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낯선 그림자에 뒤를 돌아보니, 다름 아닌 거위 한 마리! 뒤뚱뒤뚱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마냥 귀여워 보인 나는 빵 끝부분을 살짝 떼어 거위에게 던져주었다. 


  아니 그랬더니 세상에, 이번엔 저만치에 있던 다른 거위 무리까지 합세해 우리에게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가만히 있다간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에까지 그대로 입을 댈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샌드위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번엔 다시 빵조각을 떼어내 더 먼 곳을 향해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그러자 거위들은 내가 빵조각을 던진 곳을 향해 뒤뚱거리며 열심히 걸어가는가 싶더니 다시금 방향을 돌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조그마한 빵조각으론 성에 차지 않으니 더 큰 것을 내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이곳을 오는 사람들에게 이미 많이 길들여서였을까?...



  그렇게 잠시나마 가져보았던 ‘런더너’의 로망은 잔디밭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일부러 런더너가 되어보겠다고 잔디밭을 찾아 앉았건만. 결국 거위 때문에 아직 먹지 못한 샌드위치는 비어있는 벤치에 겨우 자리를 잡고서야 다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얼음 없는 콜라는 이미 미지근해져 버렸지만 콜라의 미지근함 따위 중요치 않았다. 수많은 적(?)으로부터 샌드위치를 지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저는 사실 새를 좋아하지 않아요.

(좀 더 정확히는 무서워하죠;;)

흔한 비둘기 조차, 근처에 날아오기라도 하면

기겁을 해버리고 마는데요.


런던은 마냥 좋아하는 곳이니까

그런 무서움 따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이 큰 오산이었더라고요.


그래도 사람과 다양한 새들이 도심 한복판에

함께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짧은 여행기 속 <런던> 이야기가 끝났어요.

머무르는 6일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책에서도 만나주세요 :)


다음 편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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