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가장 힘든 일, 장보기
같은 빌딩에서 지내고 있는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안젤리카(Angelica), 알시노(Alino) 그리고 나까지 우리 셋은 현재 음식 사막(Food Dessert)에서 고군분투 중인데 day 6. 오리엔테이션에 썼던 것처럼 마트는 멀고, 마트에 가도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다 같이 우버를 타고 월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문제는 이제 겨우 두 번째이긴 하지만 여기도 올 때마다 신선한 레몬이나, 채소, 허브가 다 떨어져서 구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아침에 마트를 와야 하는 것인가..)
신선한 재료가 매번 없는 것보다 더 황당한 건 일요일엔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인도, 맥주도. 지난번에는 평일에 와서 전혀 몰랐다. 멋진 저녁 식사를 위해 우버를 타고 여기까지 온 건데 이런 황당한 경우를 봤나. 직원을 잡고 물어봐도 오늘은 팔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주법은 주마다 모두 다르지만, 오하이오 주의 경우 청교도 문화와 전통이 아직 남아있어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모든 음식을 나눠 먹기로 하고 장을 봤는데, 계산하면서 비닐봉지에 옮겨 담을 때 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차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고, 잠겨 있는 건물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있는 집까지 오는데도 한나절. 엘리베이터 안에 모든 짐을 한 번에 옮기려고 엘리베이터가 닫히지 않도록 물로 고정해 놨더니, 갑자기 알람이 울리면서 911로 연결되는 참사까지..ㅋㅋ (세 명이 함께 있길망정이지.. 허허 장보기가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장을 잔뜩 봐왔으니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먹기로! 안젤리카가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만들었고,
알시노는 한병 남아 있던 맥주를 독일 출신답게 멋지게 따라 주었다. (내가 보기엔 괜찮았지만, 알시노는 완벽하지 못했다며 계속 아쉬워했다는ㅋㅋ)
어느덧 우리 셋은 매주 금요일 저녁을 함께 먹고 서로의 식재료나 양념쯤은 언제든 공유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특히 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의 삶에 대해, 각자의 작업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주 즐겁다.
오늘은 AI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SNS에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는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알시노와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안젤리카, 그리고 둘의 생각이 모두 이해되지만 조금 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나의 의견들이 맞물리며 굉장히 인상적인 토론이 되었다. (진짜 영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 답답하다, 답답해..)
이들과 대화를 하며 생각지도 못한 대화로 많이 웃기도,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가끔 못 알아듣기도 한다.) 덕분에 외로울 틈도 없다. 타지 생활에 정신없이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이들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