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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갓 졸업한 디자이너 동생에게

신입 디자이너를 위한 이야기


오랜만에 디자인 전공 후배를 만났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봄을 맞아 꽃을 보러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제 졸업한 지 2달 정도 되어가는, 취업 준비 중인 그 아이는 회색 후드를 입고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온다.


스무 살 때부터 봤던 동생이라 그런지, 학년을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수업을 듣는다고 연락이 오던 아이였다. 영상을 해보고는 재밌다는 말을 하더니, 몇몇 사람을 모아 작은 독립영화를 찍기도 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보며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직장을 찾고 있던 중이라, 아직 경력이 부족한 디자이너 신입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주위의 지인들의 말을 하나씩 내어보며, 자신이 받은 조언들의 합을 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첫 직장이 중요해서, 일단 취업을 하고 정규직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일단 디자인이 좋긴 한데, MD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해요."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긴 한데, 아직 부족해서... 몇 개 더 해야 할까 봐요..!"


듣다 보니, 8년 전 내가 사회에 첫 발을 떼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졸업전시를 마치고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내가 만난 사회는,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무표정의 얼굴로 지하철에 올라타,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향하던 발걸음들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타자 소리와 마우스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웠고, 나는 잠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그저 매니저와의 대화 외에는 다른 직원들과 제대로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었다. 겨울 시즌을 마무리하고 회사를 나오던 순간, 매니저에게 작은 땡큐카드를 전했고, 바쁘게 프린트 한 스케줄을 뒤적이던 매니저는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나의 첫 시작이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 자신의 길이 완전한 본보기가 되지는 못하지만, 우선 일을 배워보는 기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로 입을 떼었다.


좋은 회사, 대기업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먼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짧은 인턴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다.


뭔가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 그 마음들을 혹시라도 내가 풀죽게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일은 사람이랑 하는 것이기에, 디자이너로 일하기보다 사람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만 있는 곳은 없다고, 결국 어딜 가나 어려운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그 사람이 나에게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어려운 사람은 아니라고, 그저 성향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있는 것을  나열해서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에 대해 강약 조절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도   알고 저것도 잘해요 라는 신입의 패기 가득한 말이 어쩌면 부족한 수준에 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니, 하나의 메인을 잡고 다른 취미나 활동을 사이드로 소개하는 정도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너무 비슷해서, 어쩌면 더 감정이입이 되어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재능이 많은 이 친구가 처음 만나는 사회가 너무 차갑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봄처럼 따스한 아이가, 산들바람처럼 시원한 관계를 경험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삶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뿌듯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디자이너가 신입으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막막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도 막막한 요즘, 그들에게 희망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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