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첫 번째 아이'를 보고 떠오른 생각들
지난 3분기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인 기준 평균 출생아수)이 0.79명으로 집계되었고, 서울시 기준 출산율이 0.59로 떨어졌다. 1) 1분기부터 3분기까지 20만 명 미만의 출생아 수를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인구를 유지하기에도 어려울 정도의 출생률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02년 이후 1.3명 아래의 출생아를 나타내는 초저출산국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를 낳는 지인이 있다고 해서, 실감나지 않는 수치라고 하기에는 인구 감소가 생각보다 멀지 않은 듯하다.
박하선 주연의 영화, '첫 번째 아이'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박하선이 연기하는 '정아'라는 캐릭터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아래 약 15개월 간의 공백을 가진 후, 직장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복귀한 지 일주일 만에,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 엄마가 쓰러지고, 급히 베이비시터를 구하지만 계속해서 변수를 마주하는 상황을 이어가게 된다. 현 사회에서 워킹맘이라는 자리에서 한 여성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직장을 떠나 가정에 머무르는 엄마로서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매일 9-6의 스케줄이 끝나고도 이어지는 워킹맘의 일상은 어떤지 돌아보면, 흔히 이야기하는 '저녁이 있는 삶'과는 조금 멀어 보인다. 아이를 돌보는 육아부터 집안일까지,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에서 쉬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남편과 시간과 요일을 나누어서 공동육아를 하거나,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비상 상황에는 엄마의 고민이 깊어지기만 한다. 실제로 맞벌이 여성 10명 중 9명이 퇴사를 고민한다는 보고서의 결과가 보여주듯 3),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첫 번째 아이를 지나 둘째를 생각하는 여유는 더더욱 없어지고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지난 10년간 전체적인 출생아 수가 감소했을 뿐 아니라, 둘째와 셋째의 비율은 더욱 가파르게 낮아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4) 첫째 아이의 출산도 늦춰지면서, 결혼 후 2년 이내의 출산 비중도 줄어들었다. 첫째를 출산하는 평균 나이는 32.2세로 2009년의 29.8세에 비해 2살 이상 증가한 상황이며, 둘째를 낳는 경우 평균 나이는 33.8세라고 한다. 이제는 30대에 출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여성들의 커리어에서 5-7년 정도를 지나온 중점적인 시점에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워킹맘이라는 역할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영화 [풀타임]에서는 프랑스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상 스릴러라고 할 만큼, 잔잔한 배경음악을 뚫고 나오는 긴장감이 현실과 맞닿아 있어 그런지,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는 영화라는 평이 있다. 도심에서 떨어져서 지내는 주인공 '쥴리'는 열차 파업과 함께 출퇴근 대란을 만나게 되고, 아이를 맡기던 곳에서 조차 거절당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집에서 아이들을 육아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풀타임'이라는 말의 의미는 어쩌면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을 넘어, 삶에서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육아휴직이 현재 기준 1년에서 1년 6개월로 확대될 수 있다는 소식이다. 6)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1년 6개월을 지나 복귀하는 여성들이 이전과 유사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또는 경력단절만 막을 뿐, 커리어적으로는 더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7) 재취업을 하게 되었을 경우, 구직의 퀄리티에 대해 따져보면, 불안정하거나 이전보다 적은 임금의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재정적인 이유로 단지 맞벌이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기에, 육아휴직 이후에 삶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워킹맘'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엄마가 된 여성 자신도 혼란스러운 시기인 만큼, 엄마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와 관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8) '좋은 엄마'의 기준이 집에서 아이를 24시간 돌보면서 아이에게만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인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일과 육아 모두를 잘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거나, 엄마가 되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그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면, 본인이 정의하는 '좋은 엄마'의 모습과 본인 스스로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자기비판보다는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내일이 조금은 더 희망적일 것이라 기대한다.
참고자료 :
1) 서울 출산율 0.59명 '쇼크'…최초 기록 쓰는 한국의 저출산 (출처 : 한국경제) [링크]
2) 영화 [첫번째 아이] (출처 : 다음영화) [링크]
3) 엄마는 오늘도 퇴사 고민…갈림길에 선 워킹맘 (출처 : 쿠키뉴스) [링크]
4) 한국의 출산율 통계를 알아봅시다 -2020년 발표- (출처 : 티스토리) [링크]
5) 영화 [풀타임] (출처 : 다음영화) [링크]
6) [새정부 경제정책] 육아휴직 '1년→1년 6개월' 확대 (출처 : 뉴스핌) [링크]
7) '경력단절 여성 줄었다' 통계의 불편한 진실 (출처 : BBC) [링크]
8) '모성의 양가성' ...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복잡한 감정 (출처 : BBC)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