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는 기차에서
거시기.
너의 마음도 잘 있는 거지.
지난번에 사는 게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잖아.
그깟 일로 죽으면 너만 손해란 걸 모르진 않겠지만.
근데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죽고 싶을 때가 있었던 거 같아.
그렇더라도 더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고 싶다는 말.
이제라도 주어진 삶의 시간 성실하게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어.
나 지금 강릉으로 여행 가는 중인데 문득 네 목소리가 나를 깨우는 듯해서 연락한 거야.
가족 구성원들이 한 번만이라도 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라면서 울먹이며 하던 말이 생각났거든.
알게 모르게 대화가 중단된 현실 부부가 느낀 외로움은 결코 너만의 문제가 아닐 거야.
자녀 문제는 부모의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한 거 같아.
때론 양보를 해야 할 때 부모가 조건을 거는 순간 꽉 막힌 도로처럼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지 싶어.
아이러니하게도 너뿐만이 아닌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에 대한 기대치는 높고 자녀가 원하는 미래는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는 거 같아.
이를테면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자기 경험이나 방법이 정답인 양 자녀에게 일방적 강요를 한다는 거지.
서로 자라 온 환경과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볼수록 안타깝지만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다는 걸 주변에서 많이 봤어.
근데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자녀의 행복일까, 본인의 만족일까, 사회적인 관계 유지를 위한 자신의 체면 때문일까.
말하자면 부모가 기대치를 낮추지 않으면서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말은 실천하기 어려울 거 같아.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자녀가 원하는 행복 조건이 부모의 관심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자녀가 뭐든 좀 더 잘해주기를, 좀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압박하지 말고, 그야말로 소유물이 아닌 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면 어떨까 싶어.
근데 나도 한때는 나의 욕심이 자녀의 행복인양 다그치기도 했어.
하지만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사표시를 정확하게 하는 걸 보고 일찌감치 내 생각을 포기했어.
누가 뭐래도 내가 원하는 건, 절대적으로 자녀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근데 좀 아쉽기는 했어.
사실 자녀가 뭐든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
곧 끝이 보일 거 같거든.
자녀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어떻게든 자녀의 마음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마음 다해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한 부모인 듯하여 최고의 자부심을 가졌을 거 같아.
돌이켜보면 부모들이 자녀와의 의사소통을 바라면서 때때로 일방적 강요를 요구하진 않았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부모의 말이 옳다 할지라도 알고 보면 틀릴 때가 많다는 걸 빨리 인정할수록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거 같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자녀의 비웃음 뒤에서 무시당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부모와 소통이 되지 않아 비행이나 탈선으로 이어지는 자녀들을 많이 봤어.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것처럼 가정이 와해되고 무너진 거는 순식간이더라.
무너진 관계는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자녀가 가고 싶은 길에 간섭하지 말고 묵묵히 너의 길을 가길 바라.
몇 시간 전 온통 회색빛 하늘에서 간간이 보인 희망의 햇살을 보았어.
왠지 잘 될 거 같은 따스한 햇살이었거든.
거시기, 너의 삶을 전적으로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