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햇살이 삶의 겨울을 밀어내다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이유불문하고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얼마 전이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한 나는 한겨울에 만난 쨍한 햇살이 좋아 곧장 집으로 가기 싫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역 4번 출구 쪽으로 나와 육교를 건너자 길이 보였다.
바람이 없는 잠잠한 숲 속 길을 따라 걸었다.
누에다리를 지나가는데 오른쪽엔 국립중앙도서관이 왼쪽으론 예술의 전당이 보였다.
발길을 옮기자마자 아이들의 놀이터인양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래마을에 있는 몽마르뜨 공원이었다.
공원엔 토끼도 많았고 프랑스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공차기를 하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는 공원을 한 바퀴 돌다가 햇볕이 잘든 벤치에 걸터앉았다.
하늘을 보려다 말고 '부지발의 무도회'라는 조형물에 나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녀도 바람이 싫은 모양이었다.
굳어버린 표정을 되돌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나 한 것처럼.
차갑게 외면한 겨울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듯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누군가 그녀에게 내민 손이 있었다.
손에 손을 포개어 춤을 출 때 꽁꽁 얼었던 그녀의 마음이 봄눈 녹듯 녹아질 거 같았다.
어디 그뿐일까.
설렘을 안아준 손끝 따라 정지되었던 그녀의 리듬이 살아난 듯했다.
어느새 거짓말처럼 공원의 무도회장은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몸짓에 점점 빨려갔다.
상상만으로도 몸이 따듯해진 황홀한 느낌이 좋았다.
아슬아슬 발과 발 사이에서 뜨거운 온기가 봄을 불러오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원 안 여기저기서 간지러움이 기지개를 켜듯 단단하던 흙들이 꿈틀거렸다.
나는 절정에 이른 어떤 변화를 견디고 난 후 마침내 피어날 결실의 흔적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이 사랑이든,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죽은 꽃들이든 간에.
그러곤 나의 다양한 감각 기능 상태를 점검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없이 맞아온 바람 앞에서 알게 모르게 더 단단해졌다.
삶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습관처럼 기대하는 것들이 봄날의 햇살과 함께 내 품에 안기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