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그리운 어느 날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주홍빛 햇살이 나를 집밖으로 유인했다.
여행 갈 시간이 되지 않을 때 종종 한강변을 따라 걸으며 사색하는 게 낙이었다.
공원 산책은 가장 짧은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비가 오던 어떤 날엔 잠수교 위에서 흘러나온 음악 분수가 끝날 때까지 왕복으로 걸었고, 비가 그친 어떤 날엔 동작대교 아래 노을카페에서 반포한강공원까지 걸었고, 대화가 그리운 어떤 날엔 세빛섬을 따라 걸었다.
잔잔하게 부딪힌 한강의 물결소리를 들으니 문득 파스타를 좋아하던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혼자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손을 뻗으면 한강에 빠질 거 같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한참 동안 창문을 바라보는데 몇 달 전 이곳에서 친구가 흐느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더는 가족 구성원한테 희생하면서 멍청하게 살지 않을 거야. 나도 오롯이 나를 위해 살겠다고!'
오롯이 나를 위해 살겠다던 친구가 내뱉은 말이 언젠가부터 나에게도 접착제처럼 붙어 다녔다.
근데 나를 위해 산다는 게 뭘까.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이미 무관심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는데.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관계들을 무시한 채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때론 어느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게 가정이든 일터든 간에.
양가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살고 있는 게 나였다.
배려하는 습관 때문에 혼자만 손해 본 거 같고.
거절하지 못한 성향을 알아챈 상대방은 고마운 척하면서 같은 상황을 한결같이 이용하는 거 같고.
불편한 인간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적당히 거리두기 할 용기는 없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내 소리를 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운할 땐 서운했다고 말하고.
요구사항이 있을 땐 거절당할지라도 입 밖으로 뱉어보고.
싫다는 표현을 해야 할 땐 상대방 기분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고마울 땐 미소만 방긋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리액션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면서.
원하지 않은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게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인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물과 무언의 대화가 끝난 후 파스타를 주문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지금 너 있는 곳에 갈까?
응.
나는 봉골레 파스타와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