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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엔에프제이 Jan 25. 2024

어떤 레스토랑

대화가 그리운 어느 날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주홍빛 햇살이 나를 집밖으로 유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강공원을 걷고 싶었다.

나는 멀리 여행 갈 시간이 되지 않을 때 종종 공원길을 따라 한강변을 따라 사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 걷는 한강공원 산책은 나의 가장 짧은 시간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비가 오던 어떤 날엔 잠수교 위에서 흘러나온 음악 분수가 끝날 때까지 왕복으로 걸었고, 비가 그친 어떤 날엔 동작대교 아래 노을카페에서 반포한강공원까지 걸었고, 대화가 그리운 어떤 날엔 세빛섬을 따라 걷다가 자주 가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오늘은 잔잔하게 부딪히는 한강의 물결소리를 들으며 세빛섬 세 바퀴를 돌았다.

그러곤 유독 파스타를 좋아하던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혼자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좀 구석진 곳이긴 해도 손을 뻗으면 한강에 닿을 거 같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일행이 곧 올 거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한 후 한참 동안 창문을 바라봤다.

몇 달 전 이곳에서 친구가 흐느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더는 가족 구성원한테 희생하면서 멍청하게 살지 않을 거야. 나도 오롯이 나를 위해 살겠다고!'


오롯이 나를 위해 살겠다던 친구가 내뱉은 말이 언젠가부터 나에게도 접착제처럼 붙어 다녔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게 뭘까.

그러다 상대방으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라도 되면 그땐 뭐라고 답할까.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관계들을 무시한 채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때론 어느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게 가정이든 일터든 간에.

결국 양가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살고 있는 게 나였다.


늘 먼저 배려한 습관 때문에 혼자만 손해 본 거 같고.

거절하지 못한 성향을 알아챈 상대방은 고마운 척하면서 같은 상황을 한결같이 이용하는 거 같고.

불편한 인간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적당한 거리두기 할 용기는 없는 거 같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내 소리를 내보는 게 필요한 거 같았다.


서운할 땐 서운했다고 말하고.

요구사항이 있다면 거절당할지라도 입 밖으로 뱉어보는 연습을 하고.

싫다는 표현을 해야 할 땐 상대방 기분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하고.

고마울 땐 미소만 방긋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리액션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도치 않는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게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인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물과 무언의 대화가 끝난 후 파스타를 주문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 지금 갈까.

응.

나는 봉골레 파스타와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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