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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9. 2019

날씨가 좋다는 것

"날씨가 참 좋다." 날씨가 좋다고 했다. 구름 없는 푸른 하늘, 내리쬐는 햇살과 산들 부는 바람이 좋았다. 봄이 짧아졌다 해도 아직은 햇볕에 다니기 뜨거울 정도의 날씨는 아니어서 좋았다.


봄 가뭄이 심하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야 비 온 지 꽤 지났음을 알았다. 좋은 날씨 때문에 농작물이 마를 지경이 되면 농부에게는 결코 '좋은 날씨'가 아니다. 인류의 유전자에는 농경 시대보다 훨씬 길었던 수렵 채집 시대 기억짙게 남아있어서, 먹이를 찾으러 나돌아 다니기 적당한 날에 기분이 좋아지는가 싶다. 그래서 그런 날에 "날씨가 참 좋다."라고 하나 보다.

보통 하늘에 구름이 거의 없으면 '맑다'라고 한다.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흐리다'라고 하고, 구름에서 비라도 리면 '궂은 날씨'라고 한다. 구름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 듣는 일은 별로 없지만 동식물에 태양만큼 소중하다. 구름은 햇살이 뜨거울 때 덮어 식혀주는 이불이거나 비를 뿌려 생명을 살리고 하늘을 닦아내는 물뿌리개 또는 행주 같다. 궂은 날씨 만드는 궂은일을 묵묵히 하고 있어 구름이다. 구름과 눈과 비는 본디 하나라서, 수분을 끌어올려 구름이 되고 비나 눈이 되어 내려온다. 


"네가 참 좋다."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밝아서 좋고, 착해서 좋고, 나한테 잘해줘서 좋다. 날씨가 좋다고 해서 모든 날씨가 다 좋다는 뜻이 아니듯, 네가 좋다고 해서 너의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 네가 변덕스러운 것은 내가 너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수렵인과 농경인이, 개와 고양이가 서로 이해 못하듯 서로의 차이나 변화를 굳이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그날그날 변하는 것이 '날씨'라면, 날씨의 변화가 모인 특징을 '기후'라고 한다. 모든 생물은 기후에 적응하며 산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의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지, 장맛비가 내리고 겨울이 길며 가끔 폭풍우도 치는 그의 기후를 좋아하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기후가 다른 너와 내가 만나는데 세상이 멀쩡할 리가 없다. 태풍이나 가뭄 같은 별의별 자연현상이 마음 사이에서 벌어지며 조금씩 균형을 찾아간다. 기후도 조금씩 변해간다. 그래서 아름답다. 

글을 쓰는 도중에 아내와 1박 2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은 흐렸고, 둘째 날은 비가 내렸다. 물론 여행하기 적절한 날씨는 아니었다.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해서 걷기 불편했다. 바지 가랑이에 계속 물이 튀었다. 하지만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은 한적하고 맑았고, 저녁 안개 쌓인 비 내리는 사찰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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