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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Oct 21. 2020

그릇 무게는 빼고 잴게요

무게를 달아서 가격을 매기는 가게에서는 저울 눈금에서 그릇 무게를 빼고 계산한다. 수산시장이 그렇고, 캔디나 아이스크림을 덜어 파는 곳이 그렇다. 담는 그릇은 상품이 가진 본질과는 별개의 것이라서, 포함하여 계산하지 않는 것을 서로 당연히 여긴다. 


욕실 앞에 체중계가 있다. 가끔 그 위에 올라서서 몸무게를 잰다. 옷의 무게 정도는 빼나 마나 별 차이가 없다. 보통은 뭐든지 가진 것이 늘어나면 좋아라 하는데 체중은 그와 좀 다르다. 찌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가을이라 그렇다며 속으로 핑계를 대 보지만 돌아보면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금방 체지방이 쌓여버렸다.       

영혼의 무게를 생각한다. 몸을 잘 돌보지 않으면 살이 붙는 것과는 반대로, 마음을 허투루 가지면 영혼의 살은 점점 말라간다. 영혼의 무게를 재는 삶의 저울이 있다면 그 눈금이 몸무게 늘듯 늘어가면 좋겠다. 하지만 그 눈금이 가리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릇 무게는 빼야 한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빼고 재어야 맞다.


삶에서 그릇은 주로 보통 명사로 되어 있다. 학교, 재산, 직업, 경력, 지위 같은 것. 타고났든지 만들었든지 간에 그 무게는 빼어야 영혼의 무게가 정확히 측정된다. 주로 무게를 달아야 할 대상은 형용사로 불린다. 그가 얼마나 너그럽고 편안한지, 현명하고 아름다운지, 모질거나 지독한지 하는 것. 죽을 때까지 그와 같이 갈 영혼의 무게는 그곳에 있다.  


살면서 그릇을 키울 생각은 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어찌 담기는지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릇이 그럴듯하다고 좋은 내용물이 담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안을 들여다보면 겨우 체지방 같은 나태함만 무게를 더하였는지도 모른다. 한번 갖고 태어난 몸은 어차피 마지막까지 돌보며 함께 갈 수밖에 없듯이 영혼 마찬가지로 잘 돌봐야 한다. '돌보다'는 단어는 '돌아보다'에서 온 말이다.   

삶은 그릇으로 빛나지 않는다. 그릇은 자랑거리는 되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삶에서 그릇을 빼고 재더라도 풍성한 형용사로 삶을 채울 수 있도록, 몸의 살은 빼고 영혼의 살은 찌우도록 돌봐야겠다. 앞으로 가꾸며 살아갈 삶이 그릇으로만 남지 않기를, 그래서 결국 그릇된 삶이 되지 않도록 잘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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