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모든 학생이 백 미터 달리기를 했다. 보통 6명씩 뛰었는데, 3등까지는 손목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뭔가 상품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난 항상 6등만 했다. 출발하자마자 곧 뒤처졌는데, 그때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OO야. 잘 뛴다아." 엄마 목소리였다. 엄마는 내가 뛰는 것만 보아도 좋다고 했다. 아들이 꼴찌여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가 열심히 뛰는 모습에 응원을 보냈다.
응원은 '그냥' 하는 것이다. 단지잘했으면하는 마음에서나오는, 못해도 네 편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잘해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면 그건응원이 아니다. 영화 '위플래쉬'에서 드럼 선생의 행동은 말이 빨리 달리도록 배를 박차로 찌르고 채찍을 휘두르는 것과 다름없었다.말은 채찍과 욕심으로 응원받지 않는다. 그래서,경마장에는 그라운드에도 관중석에도,환호성은 있을지 모르나 응원이란 없다.
어미새는 아기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더 이상 집으로 먹이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먹이를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지켜본다. 새끼들은 어미 앞에서 날개를 펴고 하나둘 뛰쳐나오지만날갯짓에 서툴러 퍼덕이며 한참을 헤맨다. 그러다가 겨우얕은 나뭇가지로날아오르면,지켜보며응원을 보내던 어미새는 그제야아기새에게 다가간다.
자연과 세상은응원으로 가득하다. 해는 멀리 지구 식물을 응원하여 햇빛을 보내고, 식물은 꽃과 열매를 돋우고산소를 뿜어 동물에게 응원을 보낸다. 달은햇빛을지구로반사하여깜깜한밤을 응원하고, 밤은생명들이그 안에서 잠들고 사랑하도록 어둠으로 응원한다. 우리가내딛는 발걸음조차 단단한 땅의 응원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가만히 보면우리 일상도 그렇다. 맛집을 찾았다가 늘어선 줄에 당황해도, 금방 뒤로 줄을 서는 이들 덕에허기를 참고기다릴 수 있다.뭔지 뻔히 아는 전단지를매일받아 드는이들은할머니가 빨리 나눠주고 퇴근하길 응원한다. 식당 종업원의 서툰 실수에 보내는 미소는그의 생계를 응원하고, 페북과 인스타그램 친구의 사진에 하트를 보내며신산한 삶 속 그의빛나는 하루를 응원한다.
혼자의 삶이지만결코 혼자가 아니다. 운동경기 내내관중의 응원이계속되듯, 삶이라는 그라운드는온갖 자연과 사람들의 응원으로 가득하다.모르는 사이 세상별게 다 나를 응원한다. 말 그대로 별도 게도 그렇다. 내가 보는 밤하늘별빛은 나를 보려고 이미 수백 년 전 각자의 별을 떠나왔고,게는 먼바다의 삶을 담아 내 식탁에 찾아왔다.그들의 응원에 대한 응답은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냥 열심히 달려볼게요 정도면 된다.
달리다 보면바람이 응원을 보낸다. 맞바람은 다가와 가슴에 안기고, 뒷바람은 편히 달릴 수 있도록 등을 슬며시 밀어준다. 땅은 박차고 나갈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주며, 주위에 같이 달리는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기운을 더해준다.뒤로 지나치는 나무들, 온갖 사물들이 말을 건네며응원하고,그런 응원 속에서열심히달릴 힘이 생긴다.
오늘 아침에는 지구 반대편 먼 곳에서찾아온 커피 한 잔이 하루의 시작을 뜨겁게 응원한다. 너를 위해 불에 그을리고 가루가 되었다고, 그러니 너는 꼴찌를 하더라도 힘내서 달려달라고. 네가 뛰는 것이 그냥 좋다고, 네가 살아있어 참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