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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새 잎이 올라올 때

무척 힘들어 보이는 식물들이었다. 


하나는 사무실 출입구 옆 고무나무, 하나는 남향 창가 인삼팬더, 내 키 보다 조금 작은 나무 둘, 지난달 초 사무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눈에 띄었다. 처음 올 때는 리본과 색색 포장 장식과 함께 푸르고 싱싱했을 텐데 한참 동안 제대로 돌보는 이가 없었다. 고무나무는 잎 색이 누렇게 떴고, 인삼팬더는 손으로 훑으면 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둘 다 제대로 물을 먹은 지 꽤 된 듯했다. 단 흠뻑 물을 준 뒤 매주 한 번씩 꼭 챙겼다. 우리 층에 싱크대가 없어 매번 아래층에 내려가서 큰 통에 물을 길어왔다. 그렇게 한지 한 달 반이다. 얼마 전부터 나무들이 점점 제정신을 차리는 것 같더니 이제 새 잎을 내기 시작했다.

새 잎을 보며 아기를 떠올렸다. 


나무들은 연한 초록빛, 작거나 쭈글거리는 잎을 올렸다. 새 잎을 틔우는 것은 정착해서 살만하다는 뜻이다. 이제 됐다. 고비는 넘겼다. 생각해 보면 물을 챙겨주어 살린 셈이지만 이미 적절한 크기의 화분, 화원에서 넣어 준 좋은 흙, 사무실의 따뜻한 온도, 조금이나마 들어오는 햇빛 같은 생존에 필요한 다른 것들은 다 갖춰 있었다. 단지 수분이 한동안 결핍되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신입생, 회사의 신입 사원, 결혼해서 신혼부부 시절 같이, 직장을 옮기거나 승진할 때 같이, 무엇인가 새로 시작할 때 우리는 좀 서툴지만 싱싱하고 풋풋했다. 나름 무엇인가 준비하고 갖추어 그 문턱을 넘었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을 한참 넘겨 돌아보면, 예전에 내 안을 채우던, 너에게 보이던 무언가 없어진 것을 느낀다. 새 잎을 올리지 못하고 시들 거리는 모습을 느낀다.


세상은 그러면 흔히 영양제를 처방한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한다. 적응을 잘해보라 한다. 힐링하라 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물인데, 뭐가 필요한지 가만히 지켜보고 가끔 물만 챙겨주어도 갖고 있던 힘들이 새 잎을 틔울 텐데, 아기처럼 작고 쭈글거리는 새 잎이 '저 여기 있어요' 라며 올라올 텐데, 서로 무척 기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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