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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Aug 14. 2020

감정을 치유해서 잠재의식 바꾸기

감정을 정화하는 ㅂ아법 

이전 글들에서 육체와 생각의 정화를 다루었다. 이번 글에서 다룰 감정의 정화(치유)는 더 중요하다. 사람은 생각에 의존해 사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누군가 빈정거리면, 가장 먼저 감정이 올라온다. 감정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그 무의식적 생각에 따라 행동으로 반응한다.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면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화를 내버린다. 너무 순간적이라 제어를 못한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감정을 정화(치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 먼저 감정에 대해서 알아보고 사례를 통해서 감정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방법을 알아보겠다.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말한다. 즉, 감정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 사건에 대해서 과거의 경험이 내재된 자신의 관점으로 판단하여 발생하는 생각과 느낌을 말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이용하여 감정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한 번 보자.


영수는 저명한 물리학자다. 학자의 특성상 대중 앞에서 발표를 많이 하지만 그는 발표 불안증이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모든 발표를 피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가 절대 피할 수 없는 발표가 열흘 후에 잡혀버렸다. 그가 근무하는 대학의 학장이 의뢰한 일이다. 그는 열흘 후에 발표를 해야 하는 데, 벌써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발표할 때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괜히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빈도가 증가했다.  


영수는 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을까? 내면에 '나는 발표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과거의 좋지 못했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노래나 발표를 잘 못하여 놀림을 받은 경험이나 억압된 분위기의 집에서 받은 냉소적인 비웃음을 받은 경험 등일 수 있다. 내면 깊이 이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으면 원치 않는 상황이 올때 부정적 감정이 올라온다. 또한 생각을 거듭할수록 에너지가 상승하여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상태에 사람을 빠뜨리기도 한다.


물론 영수처럼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되다니, 너무 기뻐, 대단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발표를 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사람에 따라 다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발표를 하게 된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쁘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매우 큰 힘든 문제를 하나 떠안은 것처럼 생각한다. 힘들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영수를 통해서 알아보자.


영수는 발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 없이 연습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지인은 "두려운 감정을 인정해줘. 그리고 못하면 어떠니, 내려놓아"라고 말했다. 영수는 그날 밤 불을 끄고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영수는 자신의 두려운 감정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불안감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영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 발표를 못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기껏 청중들이 좀 지겨워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감정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 또한 생각으로 나타난다. 감정이 포함된 생각을 계속하기 시작하면 생각의 체인이 만들어지고 에너지가 증폭되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과감하게 생각의 체인을 끊어야 한다. 생각의 체인을 끊기 위해서는 감정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객관화시켜야 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문제라고 생각했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당면한 감정은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감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영수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영수는 매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노래를 못 불러서 놀림을 받았던 어린 영수가 떠올랐다. 어린 영수는 선생님으로부터 엄마가 노래를 연습을 안 시켜서 그렇다는 등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반 아이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그때부터 친구들은 영수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 영수의 차분한 마음에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운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치심을 느끼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기억을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본인도 그런 기억이 있다면서 공감해주었다. 영수는 그런 친구가 고마웠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본인만이 그런 것이 아니며, 이 일은 이미 지난 일이라는 것을. 현재의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영수의 내면에 살고 있는 놀림받던 아이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영수의 내면에 남아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내면 아이(Inner Child)라고 부른다. 내면 아이는 한 개인의 인생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로,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한다. 혹자는 내면 아이를 내면의 말썽꾸러기라고 부른다. 어른이 된 다음에도 말썽꾸러기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말썽꾸러기의 관점으로 판단하며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그저 인정하고 안아줘야 한다. 내면 아이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말썽의 빈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근본 원인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


걱정, 두려움, 불안함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경험, 그리고 그때 느꼈던 근본적인 감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것을 찾아내어 해소해야 한다. 영수의 경우에는 친구들 앞에서 받은 수치심이다.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수치심을 '단절에 대한 두려움, 즉, 나에게 있는 결점 때문에 사랑받고 소속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수치심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 '예뻐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와 같은 사회적 기준에 스스로가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연결되길 원한다. 나의 결점 때문에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건 죽음보다 두려운 감정이 될 수 있다. 수치심은 두려움, 걱정, 불안함 등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감정이다.


이런 수치심에 의한 상처는 공감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수치스러운 기억,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공감의 전제조건이 바로 자비심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의식 지도>에서 용기에 주목했다. 그는 용기야 말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전시켜줄 힘이라고 했다. 앞의 영수는 수치심을 받은 경험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이것은 용기다. 그리고 친구는 자신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했으며 영수에게 힘을 주었다. 이것은 자비다. 이를 통해서 영수는 본인만이 그런 것이 아니며, 이미 지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있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치심은 외부의 기준에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한다. 외부의 기준에 맞추는 것은 스스로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를 해보자. 감정은 과거의 경험이 내재된 자신의 관점에 의해서 현재를 판단하며 생기는 생각과 느낌이다. 이런 감정에는 내면 아이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데, 내면 아이는 한 개인의 인생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로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한다. 내면 아이는 때로는 내면의 말썽꾸러기로 현실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현실을 과거의 경험으로, 관점, 감정에 끼워 맞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근본 감정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하여 찾아내야 한다. 문제의 근원을 찾았다면, 이에 대한 치유는 용기를 내서 말하고 자비로운 공감을 받을 때 가능하다.


이 모든 일들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명상이 필요한 이유라 하겠다.



의식 지도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의식 지도의 수치는 에너지의 주파수 수준으로 생각하면 됨)

인간의 의식 수준을 대수로 1부터 1,000까지 수준으로 수치화한 <의식 지도>를 개발했다.

수치심(20)-죄의식(30)-무기력(50)-슬픔(75)-두려움(100)-자존심(175)-용기(200)-중용(250)-자발성(310)-포용(350)-이성(400)-사랑(500)-기쁨(540)-평화(600)-깨달음(700~1000)

● 간디의 의식 수준은 700이며 붓다와 예수는 1,000 임. 중용(250)의 단계에 이르면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정서가 안정되고 포용력을 갖게 됨. 세계 인구 전체에서 540 수준에 이르는 이들은 인구의 0.4%에 불과함. 전 세계 인구의 78%가 200 이하에 속함. 1,000만 명 중 한 명 만이 600 이상의 수준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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