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는 30년은 족히 됨직한 참나무 한 그루와 한 아름은 안아야 되는 소나무 두 그루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그 옆과 뒤로는 산자락이 이어지며 숲을 이루고 있다.
가끔 비가 내린 후에는 저 앞산자락을 휘젓는 무지개가 일상에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한다.
가을바람이 살며시 스쳐가는 아침, 나는 참나무 아래에 겨우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캠핑의자를 펴고 조용히 자리 잡았다. 넓게 뻗은 가지는 무성한 잎을 머금고, 그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라락, 잔잔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속삭임처럼, 나를 자연의 한가운데로 부드럽게 이끌었다.
가볍게 두 손으로 감싼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은 가을아침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진하게 퍼져나갔다. 깊은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스한 커피의 맛이 입안 가득 번지며, 몸속 깊이 온기를 채워주었다.
참나무 아래의 그늘은 조금 서늘했지만, 그 아래 앉아있는 나를 감싸는 공기는 한없이 고요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참나무 가지 끝에 걸린 작은 구름 한 점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나뭇잎 사이로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샤라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무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걸린 구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 우뚝 선 참나무와 그 가지 끝에 잠시 머무른 구름. 이 순간은 너무도 고요하고 완벽하다. 그런 풍경 속에서 마음은 한결 맑아지고, 나는 그저 이 순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톡...
나뭇가지 위에서 도토리 하나가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도토리는 땅에 부딪히자마자 또르르 굴러가더니 저 아래에 멈춰 섰다. 나무 위에서는 청설모 한 마리가 멈칫멈칫 나의 존재를 의식하며 서 있었다. 녀석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고, 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 창밖을 살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 청설모는 마침내 마음을 놓고 참나무 가지를 기어 내리며 도토리를 입에 물었다. 그 작은 움직임조차도 자연 속에서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느껴졌다. 청설모가 자유롭게 뛰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해가 기울면 둥근 보름달이 나뭇가지 사이를 타고 천천히 기어오르듯 흐른다. 달빛은 가지 사이로 흘러내리며 나무를 은은하게 감싸고, 그 빛은 땅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내려앉는다. 바람 한 점 없는 그 고요한 밤, 달은 나무 사이로 흐르며 시간을 멈추게 하는 듯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나는 스튜디오에 앉아 그 달빛을 바라보며 자연의 리듬 속으로 깊숙이 잠겨간다.
이렇게 자연이 빚어낸 낮과 밤의 풍경 속에서, 매 순간 자연과 어우러지고 있다.
도토리 하나 떨어지는 소리, 나무 위에서 청설모가 조심스레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순환 속에의 작은 존재로서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순간들은 언제나 곁에 있으며, 그 안에서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평온을 찾는다.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행복 충만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